페이스북은 하루에서 가장 긴 접속 시간을 가진 웹 서비스이고, 인터넷 세상에서 우리를 증거하는 신분증 같은 역할을 하는 프로필이며,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고,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것에 열광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등등-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공개된 일기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페이스북 안에서 삶을 기록하고, 생각을 만들어가고, 세상을 이해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이 문득 '두렵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그 영향력이 막연히 두려웠던걸까요, 아니면,10억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하고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용자를 확보하려는 페이스북의 숨겨진 - 그리 숨기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지만 ^^;; - 의도가 거북해서였던건 아닐까요?
이 포스팅을 올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막연했던 두려움의 정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막연히 들었던 '두려움'의 이유는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이성적인 우려이기도 하지만, 무언가 '자유'를 위협받을 수도 있겠다는 본능적인 불안감이 근본적인 원인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지배하는 누군가'를 상정해보면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본능이 꿈틀되는 것이니까요.
페이스북은 이미 우리의 관계 방식, 소통의 방식, 가치관과 태도에 이르는 거의 전 영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국가 제도나 사회 공동체가 미치는 영향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는 '이 것'이 투명하게 운영되고, 누군가의 견재를 받아야 마땅하고, 사회적 합의와 조율이 가능해지기를, 그럼으로써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페이스북이 지향하는 본질적 가치가 '공공적 성격'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internet.org by Facebook
누구나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도록 하는 세상을 꿈꾸는 페이스북이 '보편접 접속의 권리'를 주장하려 한다면, 이 지향점은 이미 사적인 기업의 역할로 한정하기 어려운, 모든 사회 공동체의 이익과 이해관계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니까요...
페이스북은 여전히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주체입니다.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일이 더 이상은 국가나 공적 기구의 일만은 아닌 세상입니다만, 페이스북이 행사하는 영향력을 제어할 장치가 없는 현재의 상황이 두려울 수 밖에 없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페이스북이 말하는 "The more we connect, The better it gets."라는 이 멋진 말에서 더 나아진다는 이 'it'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Related Posts
Blog
[함께 생각하기] #2. 밥을 끊고 온 힘을 다해 탄원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밥은 생명이다.스스로 먹는 것을 중단하는 행위는 '단호한 의지'를 필요로 한다. 생명을 지탱하는 배고픔의 욕구를 다스리며, 뜻과 마음의 결을 단단히 세우는 일... 이런 모진 결기가 필요한 삶은 '행복을 꿈꾸는 보통사람'의 방식이 아니다.무엇이 이 행위에 사람들을 불러들이는가? 양심과 정의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밥을 거를 마음마저 갖게 되었다면, 그 간절함과 겸손한 방식에 대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스스로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것일, 그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걸고 '들어달라'는 것이다. 돌을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방식보다, 겸양되며, 사려깊고, 진심을 다하는 물음이지 않은가? 무엇인가를 무너뜨리겠다는 적의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바로잡자는 호소 아니겠는가?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면... 한 국민이 스스로 생명을 담보로 기꺼이 몸을 낮춰 '청원'하는 일에 마땅히 귀
언론이 사회현상을 선정적으로 다루어 “잘못된 생각의 틀”을 씌워버리는 전형적인 사례!
아동학대는 ‘계모’가 하는 게 아니라 친부모가 일으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
2014년 3월 16일 일요일, 한국의 풍경huffingtonpost.kr
광화문 세종대로에서는 보행전용거리 행사가 열렸다.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 대회가 있었고, 명동에서는 정몽준 의원이 시민들과 만났다. 여의도에서는 김황식 전 총리가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제주도에서는 원희룡 전 의원이 제주도지사 출마 선언을 했다. 날씨는 따뜻했다. 외투를 벗고 걷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따뜻한 날씨도 추운 …
폭력에 방치된 사람들을 보호하고 지켜야야할 법적, 제도적 장치가 제 기능을 못하는 문제가 우선이다. 언론이란 이런 제도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함께 모색하도록 생각의 가능성을 열고, 다양한 길을 찾도록 촉구하는 것이 본래의 기능이다.
언론이 지적질과 선정성에 중독되기 시작하면, 그 사회
최근 위기관리 사례 분석의 종합판 - The Lab h "그들은 과연 쿨하게 사과했을까?"
올해 들어 유난히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위기"라고 부를만한 사건들이 눈에 띄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는데, 그 저변에는 "소셜 미디어 혁명"이라고 불러야 할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한 몫을 단단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소셜 미디어"라는 미디어의 변화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스"라는 것을 선별하고, 거르고 정제하는 기능을 담당하던 "저널리즘"이 점차 지배적 힘을 잃어가고, 이전 시대에는 "깜도 안 되는" 동네 소식, 주변 이야기, 가십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직접 전파되어 나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정보의 흐름을 조절하던 지식 관리자- Gate Keeper -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모든 매체 수용자와 소비자들이 스스로 정보와 컨텐츠를 선별하고, 정리하고, 평가하는 세상이 되고 있는 중입니다.
산업화 시대의 위기관리론은 새롭게 정리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