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각하기] #4.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평판과 자아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World) 속의 ‘나’의 모습은?

사회라는 것 속에 살아가는 이상, 사람은 진짜 나의 모습과는 별도로 다양한 ‘사회적 자아’를 갖게 된다. 그 중에는 내가 바라는 모습에 대한 상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비춰지는 혹은 해석되는 나의 모습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바램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습도 있고, 내가 인정하고 싶지도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은 나의 모습도 뒤섞여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다양한 모습 속에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모습을 중심으로 다양한 모습과 면모가 비교적 무난하게 균형을 이루게 되면 그 ‘자아’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과 나의 현재 삶이 괴리를 일으키거나, 중요한 누군가의 기대와 바램이 내 진짜 모습과 갈등을 하거나 하면 그 ‘자아’는 아주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된다. 

다양한 관계망이 발달할 수록 이러한 ‘나의 모습’들의 상태는 한 사람의 정신적-사회적 건강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초연결 사회(Hyper-connected Society)는 이러한 건강한 자아의 통합성에 새로운 문제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가족’은 더 이상 내가 온전히 속하는 관계의 안전망이 아니다!

이전 시대에는 ‘가족’이라는 단위가 비교적 안정적인 관계, 사회-경제적 안정, 통합된 가치관과 판단의 준거를 제공해주었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비교적 안정적인 심리적 울타리를 치고 머물면서 ‘내편’, ‘나를 믿어줄 사람’, ‘나의 실수와 모순도 포용해 줄수 있는 관계’라는 것 안에 의지할 수 있었다. 

우리의 가족은 여전히 이런 사회-심리적 안전망 연할을 해주고 있을까? 가족 사이에서 함께 공유하고 있는 부분들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함께 나누고 경험하는 것들 뿐만 아니라, 대화의 빈도와 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그렇고, 그들이 믿고 공감하며 자신의 존재를 안착시키는 곳은 반드시 가족이 아닐 수도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어쩌면 가족은 그저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동거인’이 되어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밥을 함께 먹는 동안에도 우리는 손안의 기기를 만지작 거리며, 가족의 울타리 바깥의 누군가와 낄낄거리고 사진을 주고 받으며, 댓글을 달고 있다. 아버지의 피곤과 어머니의 갈등은 어림짐작일 뿐이지만, 페이스북 상의 누군가의 힘겨움에는 손쉽게 ‘좋아요’를 누르고 격려의 댓글을 단다. 관계의 의미는 각자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고, 서로의 기대감은 어긋나고 상처받기 쉽게 되었다.

사회적 관계망(Social Network)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되고 가능성이 열렸다는 사실은, 내가 속하고 싶은 관계를 언제든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해주었지만, 거꾸로 내가 존재하고 싶은 관계망 속에서도 내가 차지하는 위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딸’, ‘형’, ‘누나’, ‘동생’ 등과 같은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들의 의미는 여전히 세습되고 유지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 내용적 코드는 전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속한 가장 기초적인 관계가 흔들리고 훼손되게 되면, 사람은 심각한 ‘자아의 위기’를 겪게 된다. 내가 알고 믿던 나의 모습은 어느 순간 ‘낯설고 알 수 없는’ 타인의 얼굴로 나타는 것만 같다.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가 중요성을 부여하는 ‘관계’의 망이 달라지게 되면, 내 자신의 모습에 대한 상도 그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나’라는 모습은 그 관계망 속에 기대되고 비쳐지는 모습을 따라가도록 압력을 받는다.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했던지, 어떤 꿈을 꾸고 있었고 어떤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지… 그것을 증언해줄 사람이 누군인지 자꾸만 혼동된다. 

내 온전한 모습을 투명하게 비춰줄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 온 역사를 증명해주고, 내 자신의 변화와 지향점, 내가 남긴 것들, 의미와 가치는 무엇이었던지, 그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담긴 내 모습은 진짜 나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스타그램 속에 담긴 순간순간의 내 모습은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라는 존재는 온전히 ‘내 것’일 수 있을까? 

나의 모습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결과물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비춰진 모습의 조합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 조합이 때로는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연히 다른, 완전히 낯선 타인의 모습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내 삶의 흔적들이 모여 비춰지는 모습인데, 내게는 너무나 낯설기까지 한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평판(reputation)‘은 본래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온전히 내 것일 수는 없는 내 모습이다. 그 모습은 누군가의 해석에 의해 생명을 얻고, 때로는 비틀어지고 달라지게 되기도 한다. 나는 끊임없이 그 모습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라지만, 그 바램과 갈증이 커지면 커질 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은 요사를 부린다. 평판의 밑그림은 내가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을 채워가고 완성시키는 건 결국 ‘누군가의 시선과 의미부여’이기 때문이다. 

관계망이 단순하고 비교적 ‘공간적 공유’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평판은 오랜시간 만들어지고, 때때로 수정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오래도록 지속되고 잘 바뀌지 않는 경향이 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공유하고, 판단을 돕는 과거의 기억이나 일화들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평판은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고 교정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된다. 작고 밀도 높은 사회 속에서의 자아는 끊임없이 평가되고 기록되는 ‘규정된 모습’ 속에 살아가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외부로 열린 세계가 주는 자유로움은 이렇게 이미 만들어진 평판을 다시 그려낼 수 있다는 바램이 담겨있다. 누구나 저지르는 실수, 지워버리고 싶은 치욕, 인정하고 싶지 않은 관계, 잘 못된 만남이나 다툼의 기억들… 이 모든 무게로부터 탈출하여 온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유혹! 마을을 떠나는 방랑자들은 모두 이러한 바램과 필요가 절실하기 때문에 길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열린 소셜 네트워크는 ‘자유’와 ‘고독’을 함께 가져다 준다. 

무한한 가능성의 네트워크로 열린 외부 세계는 내게 새로운 삶을 가능하게 한다. 페이스북에 무엇을 올릴 것인가는 온전히 내가 선택적으로 조절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질지, 무엇에 반응을 할지, 어떤 사람들과 공유할지에 대한 선택은 완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 속에 맺어진 사람들에 의해 담겨지는 내 모습은 전혀 내 통제권 안에 있지 않다. 술에 취해 쓰러진 모습, 낮잠을 자다 침 흘리는 모습, 옷을 갈아있다가 엉거주춤 비틀거리는 모습,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표정 같은 것들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누군가의 앨범 속에 담겨 던져저 버린다. 심지어는 영상으로 고스란히 기록된 추태가 생생하게 공개되고 놀림감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내 자신의 모습은 내 뜻대로 비춰지지 않고, 내 모습에 대한 해석은 다른 이들의 짧은 인상과 감성에 의지하게 된다. 그 모습을 선선히 인정하지 못한다면, 그 관계망에서 벗어나버리는 수 밖에 방도가 없다. 하지만 이 넓디넓은 ‘초연결 사회’에서는 그 어디도 ‘연결’을 끊고 숨어버리기가 쉽지 않다. ‘연결 됨’ 조차도 더 이상 온전히 내 선택이라고 할 수 없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 어긋나고 친절하지 못한 ‘시선’ 속에 내 자아는 너무나 힘들고 한 없이 고독하다. 무한한 자유의 가능성을 누릴 수도 있지만, 도저히 원치않는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달아나기에도 버거운 삶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단 한번도 이러한 사회 속에서는 어떤 모습을 적응해갈 수 있는지를 배우지 못했다. 연결망 속에서 강제로 끊겨버리거나, 혹은 강제로 불려들여져 난폭한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OO녀’, ‘OO남’ 같은 별칭은 매일매일 만들어지고,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씹고 던져지는 콘텐츠로 흘러다닌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갖는 긍정의 힘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몇 배나 되는 ‘손쉬운 비난’에 누구나 손쉽게 휩쓸려버릴 수 있게 되었다.

내 평판은 내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고 암묵적 동의가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되게 할 수 있는지, 어떤 것들을 피해야 하고 어떤 것들을 잘 조절해야 하는지, 체계적인 방법에 대해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올바른 관계 맺기와 내 모습에 대한 관리 방법이 교육되어야 한다.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대한 가능성과 변화의 혜택 만큼이나, 그 변화가 가져올 위험과 적응의 문제를 진지하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는 기술의 발전과 혁신이 가져다 줄 장미빛 미래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도 다루어야 한다. 이것이 단지 과거 시대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예절 교육’이니 ‘건전한 시민의식’ 같은 관점에서 다뤄져서는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기술과 네트워크의 이해와 활용이라는 측면에서의 관리 능력(Digital Literacy)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전제되어야 하며, 자신의 감정과 표현이 일으킬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주체적 선택을 돕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그 당연한 조건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신중하게 설계된 교육 체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라 여기고 담아 둔 사진 한장이 그 아이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 무심한 일상적 행동이 가져올 ‘나비효과’를 생각하면 두렵고 무섭기까지 할 수 있다. 교육과 시스템이 필요한 까닭은 이러한 무지와 불안에서 오는 두려움을 걷어내고, 안전하고 주체적인 선택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회에서의 평판과 자아는 여전히 ‘내 자신의 손’에 담겨야 할 필요가 있고, 그것에 대한 선택권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무작정 그 것을 따라가기에 급급해서는 곤란하다. 기술과 혁신이 남기는 결과물에 대해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일에 ‘우리 모두의 지혜‘가 꼭 필요할 것이다! 

[소통과 전망] #1. 2014년 소셜 미디어 부문에 대한 전망 (1) – meltwater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각 부문 별로 이러저러한 전망을 예견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옵니다. 늘 새로운 변화가 요동치는 디지털 영역, 소셜 미디어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종 기관, 컨설팅 사업자와 조사 업체, 구루와 블로거들이 앞다퉈 올해 주목해야 할 변화의 목록을 뽑고 있습니다.

이 전망이 얼마나 들어맞을지는 장담하긴 어렵지만, 각각의 시각을 찬찬히 살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meltwater의 2014년 소셜 미디어 트렌드 전망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source : “6 Social Media Trends for 2014 that You Need to Understand” http://bit.ly/19Tc26P

  1. 이미지를 위한 서비스 개선과 활용의 증대
    • Instagram, Snapchat 등의 활용 지속
  2. Video 활용 증가
    • Facebook sponsored video, Vine, Instagram vide, etc.
  3. 소셜 미디어 활성화를 위한 투자 필요성 증대
    • “social media is not free anymore”
  4. TV의 본격적인 소셜화 진행
    • Facebook 해쉬태그
    • Twitter TV 대화 타겟팅
    • TV 프로그램의 실시간 트윗 반영
  5. 크로스 디바이스 타겟팅
    • mobile / tablet 사용 증가
    • 콘텐츠와 캠페인 진행에 있어서 모든 기기를 넘나드는 사용성 지원 필요
    • 사용자의 기기 활용 행동 통찰 필요
  6. 블로그가 (다시? ^&^) 소셜 미디어 마케팅의 중심으로 돌아오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 각 부문 별로 이러저러한 전망을 예견하는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옵니다. 늘 새로운 변화가 요동치는 디지털 영역, 소셜 미디어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종 기관, 컨설팅 사업자와 조사 업체, 구루와 블로거들이 앞다퉈 올해 주목해야 할 변화의 목록을 뽑고 있습니다. 

    이 전망이 얼마나 들어맞을지는 장담하긴 어렵지만, 각각의 시각을 찬찬히 살펴보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는 일을 게을리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Infographic] 한눈에 보는 올 해의 소셜 미디어 이슈 2013

올 한 해 각 달마다 소셜 미디어와 관련된 중요 사건들을 한 눈에 정리해주는 재미있는 인포그래픽입니다.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조금 관련성이 떨어지는(?) 사건과 이슈들이 더러 눈에 보이지만, 한눈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는지 되짚어보기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Infographic_social_media_2013

개인적으로 중요한 변화였는데 빠진 것들이 있다면,

  • YouTube의 전면 개편과 Google +와의 연계 강화

  • Facebook의 뉴스피드 알고리즘 변경과 브랜드 페이지의 전반적인 reache 감소

  • 인스타그램의 성장과 광고 상품의 도입

  • 네이버 Line의 사용자 3억명 돌파

  • Twitter와 생중계 TV 방송의 연계 활용 확대와 트위터 광고 확장

  • 소셜 미디어 상의 위기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갑의 횡포’논란

  • Google Analytics 개편과 통합 지표 관리의 중요성

등이 생각납니다.

이번 참에 찬찬히 “우리나라의 2013 소셜 미디어 10대 뉴스”라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mind map] Social Workshop의 코스웍 설계 v.1.2

오랫동안 생각해두었던 밑그림이었지만, 덜 익은 무언가를 세상에 꺼내놓는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필요한 일일까 생각도 들고 해서 밍기적거리던 것을 꺼내본다. 꺼내두고 생각해보니, 딱히 새로울 것도 없는 데 이걸 왜 이리 묵혀두었던가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도 공들여 만든 것은 새침하니 숨겨두고 이리저리 다듬어 “내놓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꺼내는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그 나쁜 습성 덕에 채 피지도 못하고서 말려죽인 생각들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이젠 왠만하니 생기면 세상에 꺼내보려 한다. 누군가 알아서 때려주고, 다듬어주고, 덜어내고 잘라내줄 것이라 믿으며… 마땅히 오래 전에 그랬어야 했던 것을 이제야 슬그머니 내밀어본다.

Social Workshop Design v.1.2

Social Workshop 코스 설계 1차 버전

이 설계는 소셜 미디어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기만 했던 지난 해 여름(2011.07) 무렵부터 다듬어오던 밑그림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의 방식을 새롭게 하고자 할 때, 기업이나 기관이 (혹은 개인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떤 단계를 거쳐, 하나 하나 쌓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경로를 간략하게(?)라도 그려볼수 있또록 하기 위해 이리저리 조물딱 거리던 결과물이다.

그럴싸하니 방법론이라도 되는양 만들어보려 4E라고 부를 수 있게 네 가지 각 국면의 이름을 영문 E로 시작하는 말로 넣어봤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plan-do-evaluation이라는 기획의 기본 흐름에서 그리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든 기본적인 틀거리는 비슷하게 마련이고, 검증된 방법을 구태여 이리저리 비트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았다.

각 단계에서 3가지 중요 포인트를 가려내기가 무척 고심하게 된 부분이었지만, 가급적 단순하게 맥을 짚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태여 우선순위를 붙여 정리해보았다.

이 지도를 놓고 어떻게 쓰임새를 만들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리고 보면 이 것보다도 훌륭하게 가져다 쓸만한 생각의 틀거리(framework)는 많다. 생각을 단순화시키고, 당장 해야할 것들을 또렷하게 살펴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쓸데없는 곁가지 생각을 많이 만든다면 좋은 실천의 지침이라고 할 수 없다.

각 단계에 이루어지는 활동에 대해서는 찬찬히 풀어나갈 생각이다. 칭칭 매어 둔 생각의 타래를 하나 씩 풀어가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이다. 언제든, 아무 것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생각을 보태주었으면 좋겠다.

[scrap] 6 mind blowing social media statistics

최근 발견한 재미있는 인포그래픽 하나!
뭐 이를테면 누구나 짐작은 하면서도 정작 “95%“라고 수치를 적어놓고 보면 아연해지는 통계, 이런 것!

“페이스북 담벼락(wall post)의 95%에 대해 브랜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놀라운가? ^^;;

 

* source : 원문 출처는 아래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저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고…”

“…, 공중 매체의 키가 되는 대화(dialogue)는 모두의 발화(utterance)를 통해 완성됩니다. 완성이라는 표현이 좀 꺼림칙합니다. 공중매체에는 완성 혹은 종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흐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새로운 발화에 의해 언제든 개정될 수 있는 일시적인 정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SNS를 보세요. 타임라인에 한번 들어오면 어떤 발화도 무시되지 않습니다. 게시될 자리에 게시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발언도 아주 허무하게 금세 흘러가 버립니다. 또한 누군가가 올리 포스팅은 댓글과 묶이면서 하나의 메시지가 형성됩니다. …… 인터넷이 지닌 실시간 대응이라는 특성이 누구에게도 저자(author)의 특권을 부여하는 걸 거부합니다.”

– 윤영민 선생님의 <소셜미디어와 집단지성> 중, “대화 11 Marshall McLuhan과의 대화 1” 중에서

The Marshall McLuhan Center on Global Communications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다른 이야기하기의 방식과 다른지를 설명하려 할 때마다, 간명하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곤란할 때가 많았다. 윤영민 선생님의 설명 속에서 씨앗을 하나 발견하고 품에 담는다. 그토록 찾고자 하던 알맞은 설명의 가능성을 키워볼 작정이다.

정보사회학 페이지에서는 이런 묵직한 생각들이 나눠지고 있다.

윤영민 교수님이 운영하시는 정보사회학 페이지의 노트 목록

https://www.facebook.com/infoso?sk=app_166305896747528

환영 받지 못하던 변화–민주주의, 그리고 소셜미디어

지금은 당연한 듯 여겨지는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지배자와 다수의 피지배자 관계를 당연히 여겨지던 세계에서, 다수가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사회로의 변화는 무수한 소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피와 눈물로 뒤엉킨 장대한 역사의 흐름이다. 어찌 보면 민주주의는 아직도 ‘진행형’인 미완의 이상일수도 있다.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의 소망은 저마다 다르지 않을 텐데도, 그 소망을 모두가 인정하고 함께 그 가치를 지켜내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타인에 대한 ‘지배’를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있던 귀족/엘리트 들은 ‘자유의 외침’이 그들의 배타적 특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결코 낭만적인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다수에 의한 지배’라는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듯한 이념이 그리 환영받지 못했던 까닭은, 피할 수 없는 대결과 희생, 의지의 충돌과 목숨을 건 싸움이 내포되어있기 때문이었다.

 

소셜 미디어의 확산이 뜨거운 논란과 멈추지 않는 싸움을 불러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쟈스민 혁명(Jasmine Revolution —> Tunisian Revolution 항목 참조)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격동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고, 아무도 그 방향을 가늠하지 못한 채, 아주 우연한 듯한 계기의 사건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역사를 뒤흔든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파장의 한 가운데에 소셜 미디어의 잠재된 힘이 있는 것이다.

  1. SNS는 재스민 혁명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http://bit.ly/zwNHLH
  2. “SNS 혁명은 없다: 바보야, 문제는 사람이야!”http://bit.ly/ySt2A9
  3. 아랍 수다문화 칼람, SNS 타고 시민혁명에 불 붙이다 http://bit.ly/xUREjl
  4. “SNS 무서워?”…에 드러난 그들의 두려움 http://bit.ly/xEFmuv

 

Lessons of Jasmine Revolution

Lessons of Jasmine Revolution

 

많은 사람들이 이 갑작스러운 – 밑바닥에서 응축된 변화의 힘을 살펴보면 전혀 갑작스럽지도 않은 – 격동의 힘에 적잖이 충격을 받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부분은 누리고 있던 기득권이 위협받고 있거나, 그들이 만들어놓은 질서가 한 순간에 힘없이 부정당하는 ‘좌절’을 목격하고 있는 지식인 엘리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결코 감지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한 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힘을 애써 부정하고 외면하려 한다.

소셜 미디어가 불러오고 있는 변화의 내용에는 강렬한 에너지가 함축된 정치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음을 외면할 수 없다. 이 새로운 환경이 선거에서 표를 더 모으고, 비즈니스에서 더 큰 성공을 가져오고, 새로운 틈새 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얼굴과 이름을 알리는 데 쏠쏠한 기여를 해주는 ‘길들여진 짐승’처럼 굴어주길 기대한다면, 그건 순진한 바램일 뿐이다. 도구는 단지 편리함과 이득만 가져다주는 법이 없다. 기술의 변화가 새로운 질서 체계를 일구어내는 동력이 된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제임스 와트의 증기 기관

소셜 미디어가 불러온 변화 속에서 어떤 미래를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각자가 서있는 입장과 이해관계가 보이는 단면을 다르게 이해하도록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변화의 기운을 열렬히 환영하든, 불에 데인 것처럼 두려워 하든, 그 힘은 우리를 알지 못하던 세계로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휩쓸고 간 어느 시점에 서서 우리는 각자의 시선으로 그 과정을 반추해 볼 것이다.

민주주의가 불손한 개념의 생각이었고, 누구나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만으로도 배척받고 혹독한 탄압을 받던 세상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중(public)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위험한 존재인지, 지혜로운 존재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판명될 문제이다. 분명한 사실은. 환영받지 못하던 이 ‘생각의 씨앗’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었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은 그 변화가 가져온 열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