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야만의 시절을 살고 있구나

또 다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망연자실 하고 있다. 누구인들 이 죽음을 원했겠는가만서도… 절벽 위에 선 그의 등을 떠민 ‘보이지 않는 야만의 손’에 대해서는 절대 덮어두어서는 안 된다. 상대를 절멸시키기라도 해야 승리의 만족감을 만끽하는 이 ‘되먹지 못한 보복‘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지도자이기에 높은 도덕성과 무거운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도자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인격이며, 사람으로서의 욕구와 충동을 가진 존재임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절대적인 선’을 잣대로 들이민다면 우리 중 누가 떳떳할 수 있으며, 그 잣대를 넘어 자신의 소신을 실현시킬 수 있단 말인가?

정치는 타협과 관용의 소산이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란 있을 수가 없다. 가치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가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를 ‘야만’이라고 부른다. 공존의 가능성을 무너뜨리는 과도한 독선과 가학적 비난은 우리 모두에게 더 큰 절망감으로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우리는 결국 그런 야만의 수렁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다.

‘바보 노무현’

그의 힘겨운 싸움과 인간적인 버둥거림이 한낮 냉소로 묻혀지지 않기를,
그의 간절한 소망과 처연한 몽상이 그저 술안주거리로 버려지지 않기를…

죽음의 세계 너머에서만이라도,
땅 일구고 사람들 속에 환하게 웃을 수 있는 행복을 얻기를…

그리고 이 땅에서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야만의 희생제의는 이제 멈추기를,
소원해본다.

[짧은 생각] 새삼 일깨우게 된 폭력에 대하여

갑작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믿음이 허약한 사람들은 본래 폭력을 휘두르기 쉬운 법이다. 폭력이란 다른 이의 권리와 자존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행동이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 폭력과 맞설 것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마음으로 섬기는 것으로 새로운 일터를 만들 것이다.

착잡한 마음에 나선 거리에는 온통 폭력의 야만을 고발하는 외침들이 가득했다. 또 다시 대한민국은 폭력으로 맞서는 성난 사람들을 낳고 있다. 분명히 잘 못된 선택을 한 댓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권력이 힘있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사람들 가운데 있음을 다시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거리의 소식을 들으며, 책상 앞에 앉아 휘두르는 야만적 폭력과 오만한 일방통행이 하나도 다르지 않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