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소중하게 여기고 열심히 살아야 하는 까닭

지금 내가 맞이하고 있는 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을 게다.

그 인과관계를 알지 못했을 뿐 …, 지금 행복하다면 그 언젠가부터 노력한 작은 돌봄이 싹을 틔운 것일 게고, 지금 고통스럽다면 그 어느 때부터인가 저지른 실수와 어석음 때문일 것이다.

몸도 서서히 건강을 잃어가다 어느 날 탈이나 앓게 되듯, 꿈과 행복도 어느 날 불행이 찾아와서가 아니라, 무심코 흘려버린 시간들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해 망가져간 것 뿐이다.

[다짐] 희망은 본래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희망은 본래 거기에 있 게 아니라, 내가 찾고 자리를 잡아줘야 거기 있는거야!

스스로를 믿는 사람만이 희망을 보듬고 키운다. 이루어지고, 열매를 맺는 일은 내 뜻대로 할수 없지만, 바르게 세운 뜻은 아무도 가로막을 수 없다.

희망은 본래 아득히 먼 곳만 바라보고 있는 거라잖아?

희망은 자기 자신을 믿는 것

“희망은 마치 독수리의 눈빛과 같다.

 항상 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득히 먼 곳만 바로보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희망이란 바로 나를 신뢰하는 것이다. 

 행운은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용기가 있는 사람을 따른다.

 자신감을 잊어버리지 마라.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다.”

 – 안상헌 저,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pp. 88 –

[출처 : 가내훈의 가군닷컴 http://gagoon.com/xe/2264 “희망은 마치 독수리의 눈빛과 같다” 중에서]  

[토막 생각] 자연스럽다는 것에 대해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게 맞는냐고 묻는 경우들이 꽤 있는데, 그럴 때 마다 곰곰히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어떤 대화, 어떤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일까? 

말 솜씨가 좋은 사람은 많지만, 진실이 담긴 이야기는, 솜씨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손재주, 글재주, 말재주라는 게 중요하다고 수긍은 되면서도, 거기에 더한 어떤 “가치”와 “자기 다움”이 있어야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법이라는 게 특별할 게 없다고 믿는다. 귀 기울여 듣고, 자주 찾고, 어떤 궁금증이 생기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듯이, 페이지 운영에 있어서도 각각의 고유한 맛깔스러움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온갖 “기법”으로 채워진 페이지를 보다보면 왠지 “부자연스럽다”고 느껴진다. 도드라지는 독특함을 만드는 데에 긴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억지로 끼워맞춘 치장이 보탬이 될리는 없다. 

사람들의 안목은 점점 높아지는데, 그것을 자꾸 잊어버리나보다.

소셜미디어와 SNS는 어떻게 다른가?

Edgeranker 그룹에서 장정우님의 공개질문에 대해 여러 회원들의 댓글을 지켜보다가 – 소위 말하는 눈팅 ㅋ –, 여기에 대한 제 생각도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껴서 메모를 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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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를 정의한다는 게 다소 이르지 않나 싶은 생각되기도 하지만, 현상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좀더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발전된 매체”가 아닐까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소셜미디어(Social Media)라는 것이 개념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새로운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언제나 있었던 일이고, 이것이 사회적인 의사소통 체계에서 미치는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진전된 것이 변화된 점 아닐까 하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선두에 선 것이 요즘 들어 화제가 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아닌가 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등장 이전까지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직접적인 대면접촉을 기반으로 하고 통신기술을 통한 간접 소통(전화, 문자)이 더해지는 형태로 발전해오던 것이, 정보처리 기술의 혜택이 더해지면서, 느슨한 관계에 기반한 비실시간 관계 형성이 가능해진 환경으로 발전되게 된 흐름이 아닐까 합니다. 싸이월드가 ‘일촌’이라는 개념을 서비스와 결합하며, 사진을 통한 정보와 소통을 가능하게 했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망 속에서 이뤄지는 독특한 정보흐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죠. 한동안 이 모델을 따라 우후죽순처럼 개인정보와 관계 관리를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들이 경쟁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고요.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이러한 관계기반 서비스 모델의 점진적인 발달의 과정 속에 탄생한 서비스의 하나라고 이해합니다만, 최근의 변화 양상을 보면 몇 개의 킬러 서비스는 자체의 서비스 모델을 플랫폼화하고 개방화된 구조체 안에서 독자적인 생태환경을 형성시켜나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플릭커 같은 것들이죠.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인스타그램(Instagram)아니 에버노트(Evernote), 비메오(Vimeo), 텀블러(Tumblr), 인스타페이퍼(Instapaer), 슬라이드셰어(Slideshare) 같은 서비스들도, 나름대로의 독특한 서비스 영역과 문화를 만들어가면서, 유사한 관심사와 활동영역을 갖는 사람들의 관계망을 발전시켜나가기도 합니다. 이들이 애초부터 관계망을 지향한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최근의 흐름은 어떤 서비스든 일정한 사회관계망(Social Network)의 속성을 모두 내재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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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개념적으로 다른 이해방식을 갖는 대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처럼, 하나의 개념적 체계와 그의 구체적-현실적 형식의 관계 같은 거겠죠? 소셜미디어는 관계 맺음의 방식과 그것에 의해 달라지게 되는 복합적인 소통체계의 전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SNS는 그러한 개념적 기반을 갖고 있는 현실적 체계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까지가 일차적으로 드는 생각을 적어둔 메모이고요, 관련된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해가면서 좀 더 정돈된 생각들을 차근차근 더해가도록 하겠습니다.

[생각]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

소중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늘 곁에 있는 것들도 그 가치를 때때로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눈을 잡아 끄는 매혹적인 것들은 즐거움을 준다. 좋은 모습을 꾸미는 것이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이다.

중요한 것이라도 그 모양을 가꾸지 못하면 눈길을 받지 못하게 된다. 진실된 관계라던가, 돌보고 가꾸는 노력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것을 잃고나면 그 빈 자리를 알아보게 된다.

간사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놓치지 않길 소망한다. 화려한 눈속임에 현혹되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생각] 디지털 세계 속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다

나는 그닥 사교적인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을 싫어한다거나, 낯가림이 심한편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성실하기가 정말로 어렵다고 느끼기에, 쉽게 친구가 되자거나 아는 체를 하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편이다. 일이 일이다보니 소위 말하는 ‘영업’이라는 것을 해야 되는 경우도 있고, 나이를 들면서 아는 사람의 수와 질로 환산되는 것인가 의구심을 품어보는 ‘인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어떤 ‘필요’에 의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아직도 거북하기만 하다. 

디지털 매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는 대개 일정한 거리를 두는 편이다. 그닥 친절한 편도 못되고, 이야기 거리가 많다거나 유용한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뜸금없이 아는 체 하며 인사를 나누는 일이 아직도 익숙치 못하기 때문이다. 몇 번인가 관심을 두던 문제에 대해 소중한 의견을 주는 분들이 있어 성심껏 답글을 달고, 드문드문 생기는 생각토막을 ‘소신’이랍시고 트랙백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그도 역시 게으름 탓인지 그 때 뿐인가 싶다. 
모든 인간관계는 일정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화분 하나를 키우는 것처럼, 그렇게 정성을 쏟아야 인간관계의 따스함과 윤기를 맛볼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보면, 나는 아무리 돌아보아도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하는 것 같고, 살가운 남편과는 거리가 멀고, 효자 아들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런데 어찌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에게까지야… 
얼마전에야 트위터를 시작하게 되었다. 열어 두고 거의 대면대면 하던 녀석을 슬금슬금 하다보니, 재미를 느끼게 된다.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 같은 관계지향적인 서비스보다도 왠지 더 편안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조금은 덜 성실해도, 아는 체하고 인사하고, 소식주고 받고, 열심히 가꾸지 않아도 그냥그냥 또 흘러가는 것이 어쩌면 더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트윗질’을 하면서 내 싸이 미니홈피는 먼지가 뽀얗게 앉고 있다. 생각을 정리해보는 도구삼아, 성실하게 생각과 글을 다듬는 도구로 쓰려던 이 블로그 마저도, 점점 의무감만 남게 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고백하자면… 블로깅은 정말로 성실한 사람들이거나 열정적인 사람들이 하는 것 같다. 아니 적어도 글쓰는 것이 말하는 것과 같이 흘려버릴 수 있다거나, 누군가에게 소리높혀 말할 것이 있다거나, 그도 아니면 적어도 누군가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사람이거나…나는 그 무엇도 아닌 것 같아 잠시 돌아보며 생각해본다. 나는 왜 블로깅을 하던가? 가볍게 트윗질을 하듯, 그렇게 블로깅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곳에서의 글쓰기는 이상하게도 묵직한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아마도 제목을 거창하게 달아놓아서일 수도 있고,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아예 이 통로를 돌아보고, 다듬고, 통찰해보는 곳으로 정해놓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또는 가감없이 자신에 대해 다 열어두고 있어서 그럴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시간을 들여 읽을 만한 글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그 바람이 때때로 쓸데없이 진지해지려는 발버둥을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생각하고 다듬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누가 들여다 볼까 하는 생각도 때때로 해본다. 무슨 까닭으로, 어떤 링크를 타고 이곳에 들르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잠시라도 ‘음…’하고 생각해보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아니… 어쩌면 누구든 붙들고 쓸데없는 훈수를 두려하는 설익은 공명심 때문은 아닐까? 더럭 겁이 나기도 한다. 몇 일씩 아무 것도 쓰지 못하고 내버려두면 그는 그대로 게으름을 들킬까 두렵고, 갈팡질팡 제멋대로 써갈기는 글을 남겨놓으면 공연한 낙서를 했다 책잡힐까 두렵고, 이렇게 한 껍질 씩 드러난 얄팍한 깊이를 털어놓기 부끄럽다. 이 통로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나는 또 어떤 의미일까? 
어떤 방식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 다시금 멈추어 생각해본다. 이 한마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지, 스치듯 흘러가는 디지털 세계 속의 그 관계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