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의 변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미디어렙법안이 한나라당의 단독입법으로 강행처리되었다.

관련 기사 :http://bit.ly/w LJZJZ (연합뉴스)

문제는 이 법안이 왜, 지금 핫 이슈가 되는냐 하는 점이다.

대개 날치기로 통과되는 법안들은 누군가의 절실한 이해관계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를 해서라도 통과되어야 하는 문제들이고, 또 많은 경우, 국민들은 그 법안의 결과물을 체감하고 문제를 느끼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모두의 당면한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문제라면, 어떤 정치인도 무대뽀로 밀어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새벽녁에 기습적으로(?) 날치기를 한 걸로 보면, 이 법안으로 인해 누군가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요, 그에 따른 문제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 누군가에게 막연하게 밀쳐졌다고 추정해도 무방하다. 생각해보라, 노동관계법이 날치기 될때, 대체로 “저건 또 뭔 난리여 젠장… ” 하면서, 그 법안의 결과가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채 15년도 안되어서 비정규직 문제는 “상당히 많은 우리”의 밥그릇을 흔드는 위험한 손길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이 문제가 나의 생활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짚어보자면 (굳이 앞으로 예상되는 민망한, 봐주기 힘든 광고물의 범람은 그렇다치고…ㅠㅠ) 광고 산업의 규모가 대략 10조원을 넘어섰고, 전체 문화 산업에서 약 15%이상을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광고산업통계시스템 http://adstat.kobaco.co.kr/ 2011년 조사 자료)만 생각해봐도,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참고 : 2011년 광고산업통계 최종보고서 참조 ]

[참고 : 국내 광고시장 규모 벌써 10조원?… (전자신문)]

우리가 접하는 거의 대부분의 볼 거리, 읽을 거리, 즐길 거리 중에서, 직접적으로 내 돈을 지불하지 않는 모든 컨텐츠들은, 오로지 광고수입에 의존하여 그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진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 내용들이란 돈을 대는 사람(광고주)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마련이고, 시청자의 권리라던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보다는 사적인 셈(이해관계)를 따라 내용이 편성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리고 그 광고들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광고에 돈을 대는 사람들의 이익을 부추기기 위해, 더 많은 소비, 더 즐거운(?) 생활방식, 더 편리한 도구와 기능을 선전하기 위해 최고로 숙련된 설득의 기술을 사용한다.

광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은 오늘날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처럼 여겨진다. 감당할 수 없는 욕구, 지갑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비의 유혹, 더 멋있게 더 폼나게 지갑을 열라는 꼬드김을 외면하고 살기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마련이고, 그 끝을 모르는 욕망의 질주는 삶의 균형이 무너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여기까지는 지겹도록 들은 물질만능 사회의 폐혜쯤이라고 해두자.
보다 직접적으로는 신문-방송의 결합 형태를 띄고 있는 언론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민영 광고영업대행사(이들이 바로 미디어렙이다!)를 통한 광고 영업을 약 3년(2.5개월 정도) 정도 유예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동안 종전의 방송사업자는 1공영 다민영체제라는 제약에 갖혀 여전히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광고 영업을 위탁해야 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의 광고 영업을 패키지형태로 묶어서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여전히 유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MBC가 헌법소원도 불사(관련 : http://bit.ly/wxJ02s) 하는 까닭은, 방송-미디어의 공공성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이 너무나도 노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누구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셈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년 10조원에 육박하는 광고시장의 파이를 놓고, 저마다 칼과 접시를 들고 자신들이 가져갈 이익의 크기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언론사들이 얽힌 싸움이다보니,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은 둘째치고, 누구의 이익이 될 것인가하는 셈법이 기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낯뜨겁지만 사실이다…

언론이 공공의 이익과 미래 가치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든 행위가 우리의 생각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진흙탕 싸움의 끝에 서서히 승자와 패자는 갈리겠지만, 그 저열하고 처절한 싸움의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질나쁜 컨텐츠와 뻔뻔한 장사놀음, 공해에 가까운 광고의 범람 뿐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KBS의 수신료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번외경기로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 여전히 언제나 지갑을 열어 바치는 “영원한 호구“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광고도 유익한 정보의 한 종류로 자리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광고의 유통 구조가 균형을 잃고 왜곡되게 된다면,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매체 경험은 싸구려 이해관계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려버리게 될 것이다.

미디어렙범의 결과가 십여년 쯤 후에, 우리의 미디어 산업을 쌈마이로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법안의 처리가 남긴 것이 부끄러움과 몰염치, 타협과 무지의 소산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도대체 어떤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될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눈길이 서늘하고 무섭다.

………

[생각] 블로그 생태계의 적조현상, 광고 포스팅

적조(赤潮)는 “토양이나 하천·바다의 부영양화(富營養化)로 해수 플랑크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적색계통의 색을 띠는 현상
(출처 : 다음 백과사전 – 적조현상)“을 가리킨다. 플랑크톤은 수 많은 바다 생명체의 먹이가 되는 바다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존재이다. 하지만 특정한 요인에 의해 플랑크톤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이들이 내뿜는 독소가 바다 생물의 신경을 마비시키기도 하며, 부영양화를 이룬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일시적인 산소부족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일단 적조가 발생하게 되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며 해안가에서는 새나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단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그 영향은 거대한 재앙으로 작용하여 그 체계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서운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블로그 생태계는 이러한 위험한 적조 현상을 예비하고 있다. Google의 ADSense로부터 조용히 시작된 블로그 내 광고 게재는 블로그의 잠재력이 주목 받으면서 동시에 ‘변종 광고’의 이상증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콘텐트 매칭(matching) 광고’라는 컨셉으로 광고를 일종의 콘텐트로 수용할 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광고를 싣기 위해 콘텐트를 무작위로 찍어내는 블로그들도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광고와 기사가 혼동되는 현상을 심심찮게 보이던 신문이나 잡지의 병폐가, 벌써부터 블로그 생태계에도 적잖은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 생태계가 완전히 성숙되어 충분한 자정기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온갖 기기묘묘한 마케팅 기법으로 무장한 광고 상품들이 이상 증식하게 된다면, 이제 막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얻기 시작한 블로그 미디어의 위상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그 영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광고를 무작정 멀리한다는 것도 해법은 아닐 것이다. 미디어 산업에 있어서 ‘광고’라는 것은 바다의 플랑크톤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미디어의 생존 방식은 두 가지 형태로 유지된다. 첫째는 생산된 콘텐트에 대한 구독료( 또는 수신료)를 받거나, 콘텐트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그 콘텐트의 특정 영역에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신문이 ‘매스미디어’의 전범을 만든 이래로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의 기본 구조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신문, 잡지, 라디오, TV 같은 오랜 미디어는 물론, 인터넷을 필두로 한 뉴미디어 세계에도 광고는 저렴한 또는 무료로 콘텐트를 유통시킬 수 있게 하는 유력한 기재로 군림하고 있다. 바다 생명체들이 플랑크톤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먹이사슬로 하여 지탱되듯, 수 많은 미디어들은 많건 적건 광고주들이 내민 광고 수입에 의존하여 생존해간다.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면 광고는 블로그 생태계를 살찌우고 그 구성원의 왕성한 활동을 뒷받침하는 유용한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법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에 최초의 배너 광고가 나타났을 때, 광고는 비전에 불과한 수 많은 인터넷 사업들을 현실화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광고 단가로 계산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회원 수는 광고 구독자 수를 의미하게 되었다. 새로 등장한 매체인 인터넷에 게재되는 광고는 상대적으로 주목도나 반응률이 높아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의 성장은 앞선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게 커져갔고, 그 만큼 성숙된 생태계 균형을 찾기도 전에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 일종의 ‘적조현상’을 겪게 되었다. 콘텐트보다 광고의 면이 훨씬 커져갔고, 화면을 아예 덮어버리거나 광고 재생이 끝날 때까지 사용자를 꼼짝없이 붙들어 두는 광고상품도 등장한다.[footnote][각주] 상대적으로 역사가 긴 이메일도 이 즈음부터 ‘스팸’이라는 반갑지 않은 유해생명체(?)가 이상 증식하기 시작했다. 사이트 운영자들을 지금까지도 괴롭히는 문제는 수 많은 필요가 요청되는 ‘팝업’의 문제이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담아야 하는 정보와 노출되기를 원하는 광고는 넘쳐나기 때문이다.[/footnote] 이 문제가
지금도 말끔히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뢰성을 인정받는 매체의 경우, 광고와 콘텐트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고 광고는 광고임을 분별할 수 있는 표시를 달아두는 노력을 한다. 매체로서의 생명력이 콘텐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광고를 노출시키는 기법에 있어서도 사용자의 선택권을 배려한 여러 가지 기능(팝업 차단 기능, 소리 조절 기능, 사용자 반응에 따라 재생되는 동영상 등)이 도입되고 있다. 말하자면 인터넷 사이트는 이제야 광고를 다루는 일정한 자정기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막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블로그 미디어도 광고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제는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광고란 어떤 형식과 틀을 가져야 하는지, 광고와 콘텐트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고 값을 매겨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의 필요성은 몇몇 블로그 사업자들이 시도 하고 있는 서비스 모델을 지켜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블로그 코리아(www.blogkorea.net )는 ‘블로그 뉴스룸&리뷰룸’ 메뉴를 선보이면서,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제공되는 이른바 ‘블로그 보도자료’를 블로거들과 매칭시키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뉴스와이어 같은 보도자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홍보를 원하는 측에서 제공한 소스를 근거로 포스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레스 블로그(www.pressblog.co.kr)의 경우 ‘정보레터’라는 형식으로 일정한 보상을 전제로 한 뉴스 소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블로거들을 위해 해당 제공처의 로고 이미지, 상품/서비스 이미지, 동영상 소스 등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블로그(www.allblog.net)를 운영하는 블로그칵테일의 경우, 위드블로그(http://withblog.net/beta/)라는 블로그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을 시험운영 하며 블로거의 독립성과 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블로그를 정립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어떠한 성과와 문제점을 드러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기사소스를 그대로 편집도 하지 않고 게재하는 블로거들도 나타나고 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기사로 실어버리는 무책임한 기자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샘플이나 기타 대가를 제공받으면서 그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제품 리뷰나 사용기를 올리는 블로거들도 존재한다. 그러한 행동이 미칠 영향에 대해 일정한 가치기준을 제시할 ‘데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겠지만-필요하지도 않겠지만…- 블로그 생태계를 위협할 ‘광고 포스트’들이 손쉽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광고도 유용한 콘텐트가 될 수 있음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생산적인 노력 없이 제공된 콘텐트 소스들을 편하게 복사하여 실어 나르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넘쳐나는 쓰레기 콘텐트들로 인해 그토록 원하는 광고 유치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 사이트들의 사례를 돌아보자. 서비스 사업자들은 이들에게 제공되는 보상체계가 어떤 결과를 유도할지 책임 있는 자세로 서비스 설계를 해야 한다. 기업과 기관은 블로그를 광고나 홍보의 수단이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 접근해주었으면 하고 희망해본다. 블로그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광고 포스트들은 블로그 생태계의 힘으로 자정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미디어(We Media)’라는 블로그 생태계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해지기도 쉽고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살피고, 암묵적인 공통의 가치 기준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광고라는 양날의 칼을 어떻게 쓰는지는 우리가 디디고 있는 블로그 생태계의 ‘문화의 힘’에 달려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공존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이어가고,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광장을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광고와 마케팅의 도구로서 블로그를 이용하여 살아갈 수 있으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미디어 환경이 정립되기를 꿈꾸어본다.

[짧은 생각] 공적인 것, 사적인 것, 그리고 블로그

두 가지 대비되는 단어로 생각하면 명료하고 분명해진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곧은 것과 굽은 것… 그래서 흔히 사물을 바라볼 때 이러한 논법을 들이대면 모호하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면서 분명한 판단을 할 수가 있게 된다. 모호한 것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개 사람들은 갈래길 중 하나를 선택하여 바라보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명료한 선택을 어렵게 하는 애매한 대상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멈추어서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통찰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반드시 대립되는 쌍으로만 이루어져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이따금씩 생각해보게 된다. 이 글은 개인적인 이야기에 속할까, 공적인 발언으로 다루어야 할까? 자신의 생각을 아무런 제약없이 적는다는 점에서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일 수 있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누군가 읽을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쓴다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그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일정한 수를 넘어서고, 그 글이 이곳 저곳 인터넷 미디어를 타고 전파된다고 한다면, 그 글은 이미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얼마만큼의 사람이 보게 되면, 또 어떠한 매체에 옮겨지게 되면 공적인 글이 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며 느낀 소회를 자신의 블로그에 적는다면, 그 글은 과연 사적인 독백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요즘 온 나라가 한 인터넷 논객의 글로 인해 온통 들쑤셔놓은 듯 시끄럽다. 그의 발언이 언론 매체에도 인용되고 있고, 방송 시사 프로그램과 뉴스 프로그램에서도 그의 발언을 두고 비판과 지지가 엇갈리고 있다. 경제에 대한 그의 식견이 놀랍도록 높아,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의 글을 전부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전통적인 공적인 글쓰기와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는 거리낌없이 그의 생각을 상당히 ‘사적인’ 어투로 풀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 수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애초에 이런 결과를 예상했던 것일까?  이제 그의 글은 왠만한 신문 사설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주목하고 있고, 찬탄과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일정한 형식을 갖추기를 요구하는 사람도, 기대하는 사람도 없다. 그는 여전히 개인 자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은 것뿐이기 때문이다.

블로그라는 도구가 창출한 ‘열린 공간’은 우리에게 새로운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누구나 언제든 무엇이나 말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어떻게 사용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남아있다. 블로그를 가리켜 ‘1인 미디어’라고 할 때, 우리는 이 애체의 공적인 성격에 대해 이미 동의한 것일까? 그렇다면 블로그에 올라온 이야기는 모두 근거가 있고, 확인 된 사실이며, 출처가 분명한 것이라고 간주해야 한단 말인가? 하루 방문자가 수 천명을 넘는 블로그의 주인이 실수로 잘못된 사실을 올린다거나, 누군가의 명예를 손상시킬 수 있는 언사를 한다던가, 단순한 가정이가 추측에 불과한 이야기를 사실과 혼동할 수 있게 얘기한다면 그 결과가 미칠 파장은 과연 개인의 말실수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모든 블로거들에게 언론인의 정신과 엄정한 책임을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블로그가 점점 영향력을 얻어갈 수록 우리는 분면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새로운 문화적 현상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지껏 우리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장에 늘어놓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살았다. 자신의 감정이나 관계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게 정제되어 일정한 형식 안에서 언급 되어야 하고, 솔직한 생각이나 느낌은 자신만의 사적인 영역에 보관해 둘 것을 권고 받았다. 우리가 블로그라는 도구를 자신의 생각을 꺼내놓는 장이라기 보다 정보를 모으고 정리해두는 데에 쓰는 까닭은 아마도 이러한 문화적 경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암암리에 블르고를 공적인 발언 공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로그를 둘러싼 문화 현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개개인의 감상을 적고 일상을 기록하던 도구가 이제는 가히 왠만한 신문이나 방송과 맞먹는 영향력을 얻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미디어(we media)인 블로그는 그 열린 공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혜를 요구하고 있다. 열린 소통의 도구로서 유용하게 사용하면서도, 그 뒷면의 어두운 폐혜를 지혜롭게 다룰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면 한 동안은 그를 둘러싸고 혼란이 벌어지게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까지 분명한 답은 주어지지 않았다.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동시에 공적일 수도 있는 소통의 수단이다. 명쾌하게 어느 한편으로 가름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들 모두가 조심스럽고 심사숙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웹 2.0] 영상 저작물에서 아날로그적 소재의 활용

미디어가 폭발할지경으로 늘어나면서, 그 채널을 타고 흘러다니는 내용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UCC는 이러한 흐름 중에서도 이미 도도한 대세를 이루고 있는 변화의 중심에 속한다. 생산의 주체가 한정된 전문가 집단에서 벗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뉴스와 이야기거리,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데 뛰어들면서, 새로운 형식 또는 기존의 컨텐츠 생산 방식의 융합과 차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새로움은 과감한 시도만큼이나 설득력과 매력이 높은 것들이 많아서, 오히려 기성 미디어에서 UCC 스타일의 개성을 차용하기도 한다.

팝업북 형식의 광고 CF들이 많아진 것도 최근의 흐름이다. 디지털 영상의 현란함이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정체 현상을 보이면서,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아날로그적인 소재인 종이, 찰흙, 천, 크레용, 블럭 같은 일상생활 속에 친숙하고 사람냄새나는 소재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 영상은 복잡한 프로세스나 업무를 이해하기 쉬운 비디오 영상으로 만드는것으로 유명한 CommonCraft(http://www.commoncraft.com/)에서 제작한 영상물이다. 이들은 대체로 손으로 그린 드로잉과 가위로 오려낸 이미지들을 이리저리 옮기거나 더하고 빼면서, 복잡한 절차와 사용법, 서비스의 개념이나 장점, 비즈니스 모델 등을 시각화하고 있다.

Goolge Reader에 대한 다음 영상물을 보자.

이 비디오는 “블로그가 어쨌다는 건가? (What’s the big deal about blog?)”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블로그의 영향력에 대해 경이로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블로그가 미치는 변화와 이전 시기의 매체 환경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통찰하기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운 개념과 설득의 과정을 이들은 지극히 간단한 도표와 그림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2분 58초짜리 짧은 영상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왠지 블로그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 설명에 동원된 개념과 데이터가 전문적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을 일상어로 손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기법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쉽지 않은가? (영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요? @.@)

아주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기업의 전자제품이나 솔루션, 프로그램, 캠페인 같은 일정한 설명과 설득의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이러한 영상물들을 아주 가까이서 자주 만나게 될 것으로 생각이 된다. 미디어와 기술이 발전하면 할 수록 사람은 더욱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사람냄새가 나는 유쾌한 컨텐츠에 끌리기 마련이지 않은가 말이다.

[관찰] 블로그 코리아 미디어블로그에 대하여

블로그 코리아(http://www.blogkorea.net/)에서 서비스 하는 미디어블로그라는 것에 대해 흥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기존의 언론사와 기업이 보도자료라는 형식을 통해 의사소통하며 기업홍보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미디어블로그는 블로거와 기업이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있어 기존의 보도자료와 유사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블로거를 독립적인 미디어 리포터로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뉴미디어라고 일컬어지는 블로그 스피어도 결국은 기존 미디어의 메커니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인지… 사뭇 우려와 궁금증이 교차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침묵하며 지켜볼 뿐이다.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까.

[생각] 제한적 실명인증제 그리고 디지털 문화

얼마전 OECD 장관회의 개막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의 힘은 신뢰가 담보되지 않으면 독이 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하였다. 한창 촛불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던 시점에서 나온 발언인지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원칙론을 이야기 한 것 처럼 보이는 이 발언의 “진의”가 그야말로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 미묘한 발언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의 몇 몇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인터넷의… 신뢰“라는 것을 “담보하기 위해” 내놓은 정책 중 하나가 통칭 인터넷 실명제, 정확히는 제한적 본인 확인 제도라는 것이다. 본래의 취지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해 과도하게 요구되어 유출의 위험이 높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옥션의 해킹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 그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익명성의 폭력이라고 지칭되는 무분별한 욕설, 인신공격, 악의적인 루머, 사실 왜곡 등이 인터넷 상에서 줄어들었다고 볼수 있느가? 더 근본적으로는 풍문, 루머, 악의적인 농담, 부풀려진 이야기, 근거없는 비방, 욕설 등이 인터넷 상에서만 존재하는 현상인가?

화장실 낙서라는 문화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 화장실 뒷담화는 때로는 권력자에 대한 비아냥도 있고, 감춰진 욕구를 마구 쏟아낸 음담패설도 있고, 근거없는 비방이나 창작에 가까운 헛소문도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화장실을 벗어나 공적인 장으로까지 올라오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어서, 명예에 큰 손상을 입는 사람도 있었고 섬세한 감수성에 상처를 받아 적잖이 괴로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고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간부터 우리와 함께 있었던 소통의 한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쿰쿰한 냄새를 풍기기는 하더라도, 그 이야기들은 애초에 감정적 배설을 위한 목적으로 갈겨쓴 글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화장실 낙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은 이에 대한 과민한 대응에서 시작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반대하는 촛불집회를 분기점으로 한 인터넷 미디어에 대한 최근의 대응은 진지한 정치적 의사표현과 소신에 찬 자기발언 뿐만 아니라 ‘화장실 낙서’까지도 수면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그들은 인터넷이 미디어의 제도적 기능을 훼손하고 있다고 하는 극단적인 발언도 서슴치 않고 있다. 그 시선 속에는 인터넷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수 많은 이야기들은 그저 시정잡배, 어중이떠중이의 불온한 낙서라고 단정짓고마는 생각의 편향성이 담겨있다.

한 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도록 하자.

인터넷의 힘에 왜 신뢰가 담보되어야 하는가?

Keumho_Construct_Advertorial인터넷 매체가 언론이라고 불리우는 기성 제도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징후들이 나타나면서부터, 그 징후들을 위험하다고 인식한 몇 몇 ‘어르신들’께서는 이 신생 매체의 불량스러움을 참을 수 없었던가 보다. 그들의 눈에는 이 위험한 매체가 법도 상식도, 교양머리도 없는 언터쳐블 불량 청소년처럼 보였던가 보다. 그들은 언론의 중립성, 객관성, 공익성을 근거로 인터넷 매체에게도 그와 같은 역할을 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언론이 중립적이라고? 객관적이라고? 공익을 우선한다고? … 누군가 이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광고와 기사가 구분이 되지 않는 이런 기사(← 읽어봅시다)를 무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모든 논란의 본질은 서로의 입장과 이익을 둘러싼 대립에서 싹을 틔우게 마련이다. 인터넷 매체를 둘러썬 새삼스러운 과민반응은 그 매체가 가리키는 어떤 지향점이, 그 발언이, 그것이 날라다주는 어떤 내용이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재갈을 물리고 싶은 것이라는 것이다.

어떤 제도가 사회적 문제를 일소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현상들은 그것을 낳은 일정한 구조적 힘, 집단적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비로소 올바른 방향으로 가닥을 잡게 마련이다. 인터넷 매체에 넘쳐나는 각종 불량스러운 언사들, 집단적 폭력, 삽시간에 번져버리는 놀라운 전파력의 파괴적인 힘,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얻어지는 가학적 쾌감 등등의 현상들은 한 두 가지 제도를 도입하고 위협을 가한다고 해서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문화는 기본적으로 모두에게 개방적이고, 누구나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충실하며, 강한 결속과 전파력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올바른 길을 벗어나지 않으려는 집단 지성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인터넷 매체에 신뢰를 요구하기에 앞서, 신뢰라는 것이 누구와 누구 사이에, 어떤 기준을 말하는 것인지 분명한 태도를 밝혀야 한다. 듣기 거북하다고, 무질서해보인다고, 논리적이고 세련된 어법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입을 법규와 제도로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반인 셈이다. 언론의 자유는 불가침의 절대적 가치라고 동의하면서 어째서 인터넷 매체의 수 많은 목소리에는 다른 기준을 적용하려 하는 것인가? 인터넷 매체에 올바른 목소리가 담겨야 한다고 믿는다면,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여 자신들의 지위와 호칭을 떠나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 한 명의 동등한 네티즌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라! 인터넷 실명제가 필요한 사람은 바로 당신들이다. 보도자료와 기사라는 제도화 된 소통의 틀을 벗어나 인터넷 매체 안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는 위엄있고 멋진 당신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한 지도자들의 모습을 통해 성숙되어가는 디지털 문화가 인터넷 실명제와 같은 유명무실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대신하는 그 날을 꿈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