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전망] #2. 기술혁신과 일상의 변화, 그리고 브랜드와의 관계 – Leo Burnett

Leo Burnett이 지난 해 10월에 SlideShare에 공유한 “The Future of Advertising: How brands can embrace miraculous new technologies to change our daily lives“라는 자료가 새삼 눈에 들어와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Leo Burnett은 기술이 변화시키는 일상을 3가지 상황을 상상하여 우리가 경험하게 될 새로운 생활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 Leo Burnett and Contagious: Wildfire / Full of Tomorrow – Scenario 1 :: Haptic Experiences

2. Leo Burnett and Contagious: Wildfire / Full of Tomorrow – Scenario 2 ::  Smart Health

3. Leo Burnett and Contagious: Wildfire / Full of Tomorrow – Scenario 3 :: Human Body as Interface


상상으로 그려진 미래의 모습은 대부분 현재의 기술에서 충분히 가능할 법한 경험들입니다만, 어떤 것들은 영화 속에서나 볼듯한 먼 미래의 일들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즐거운 상상으로 남겨둔다면 무언들 얘기 못할까 봅니다만, 이 영상들은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여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브랜드들의 ‘미래경쟁’을 엿보게 하고 있습니다.

Leo Burnett의 “미래의 광고(The Future of Advertising)”를 제가 이해한 방식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브랜드는 이제 ‘마케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좀 더 ‘총체적인 경험’에 다가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그 경험 과정에 참여하여 ‘고유한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방식으로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좀 더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에 가깝게 될 것이고, 브랜드가 관여하는 접점에 해당하는 각종 기기와 센서, 디스플레이와 상호작용 체계 등은 ‘고유의 식별값(IP Address ?)’을 부여받고, 실시간으로 24시간 내내 정보와 데이터를 교환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브랜드는 “공감과 소통을 지향하는 환경(Empathetic Ecosystem)”을 창출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들은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브랜드는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 사이에서 “연결 조직(connective tissue)”이 될 수 있을까? (Can brands be the connective tissue between new technology and real people?)

기술의 변화 양상은 속도와 방향을 가늠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도도한 변화의 줄기가 만드는 커다란 그림은 대체로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있으며, 우리에게 생각하는 법, 일하는 법,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법, 사회 제도와 체계를 유지하는 법에 있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기술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 낸 변화의 의미를 바르게,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미디어렙법의 변화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

결국 미디어렙법안이 한나라당의 단독입법으로 강행처리되었다.

관련 기사 :http://bit.ly/w LJZJZ (연합뉴스)

문제는 이 법안이 왜, 지금 핫 이슈가 되는냐 하는 점이다.

대개 날치기로 통과되는 법안들은 누군가의 절실한 이해관계와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굳이 무리(?)를 해서라도 통과되어야 하는 문제들이고, 또 많은 경우, 국민들은 그 법안의 결과물을 체감하고 문제를 느끼는 데 꽤나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모두의 당면한 이해관계를 건드리는 문제라면, 어떤 정치인도 무대뽀로 밀어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새벽녁에 기습적으로(?) 날치기를 한 걸로 보면, 이 법안으로 인해 누군가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요, 그에 따른 문제는 미래의 어떤 시점에 누군가에게 막연하게 밀쳐졌다고 추정해도 무방하다. 생각해보라, 노동관계법이 날치기 될때, 대체로 “저건 또 뭔 난리여 젠장… ” 하면서, 그 법안의 결과가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리고 채 15년도 안되어서 비정규직 문제는 “상당히 많은 우리”의 밥그릇을 흔드는 위험한 손길로 증명되지 않았던가?

이 문제가 나의 생활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 짚어보자면 (굳이 앞으로 예상되는 민망한, 봐주기 힘든 광고물의 범람은 그렇다치고…ㅠㅠ) 광고 산업의 규모가 대략 10조원을 넘어섰고, 전체 문화 산업에서 약 15%이상을 상회하고 있다는 사실(광고산업통계시스템 http://adstat.kobaco.co.kr/ 2011년 조사 자료)만 생각해봐도, 우리의 일상을 흔드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참고 : 2011년 광고산업통계 최종보고서 참조 ]

[참고 : 국내 광고시장 규모 벌써 10조원?… (전자신문)]

우리가 접하는 거의 대부분의 볼 거리, 읽을 거리, 즐길 거리 중에서, 직접적으로 내 돈을 지불하지 않는 모든 컨텐츠들은, 오로지 광고수입에 의존하여 그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진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 내용들이란 돈을 대는 사람(광고주)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마련이고, 시청자의 권리라던가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보다는 사적인 셈(이해관계)를 따라 내용이 편성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그리고 그 광고들은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광고에 돈을 대는 사람들의 이익을 부추기기 위해, 더 많은 소비, 더 즐거운(?) 생활방식, 더 편리한 도구와 기능을 선전하기 위해 최고로 숙련된 설득의 기술을 사용한다.

광고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은 오늘날 어찌보면 당연한 현상처럼 여겨진다. 감당할 수 없는 욕구, 지갑의 한계를 넘어서는 소비의 유혹, 더 멋있게 더 폼나게 지갑을 열라는 꼬드김을 외면하고 살기란 점점 더 힘들어지게 마련이고, 그 끝을 모르는 욕망의 질주는 삶의 균형이 무너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여기까지는 지겹도록 들은 물질만능 사회의 폐혜쯤이라고 해두자.
보다 직접적으로는 신문-방송의 결합 형태를 띄고 있는 언론 재벌들의 이익을 위해 민영 광고영업대행사(이들이 바로 미디어렙이다!)를 통한 광고 영업을 약 3년(2.5개월 정도) 정도 유예하도록 했다는 사실이다. 그 기간 동안 종전의 방송사업자는 1공영 다민영체제라는 제약에 갖혀 여전히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광고 영업을 위탁해야 하고, 방송의 공공성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방송이나 종교방송의 광고 영업을 패키지형태로 묶어서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여전히 유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MBC가 헌법소원도 불사(관련 : http://bit.ly/wxJ02s) 하는 까닭은, 방송-미디어의 공공성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칼날이 너무나도 노골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누구의 이익?“이라는 단순한 셈법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년 10조원에 육박하는 광고시장의 파이를 놓고, 저마다 칼과 접시를 들고 자신들이 가져갈 이익의 크기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언론사들이 얽힌 싸움이다보니,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은 둘째치고, 누구의 이익이 될 것인가하는 셈법이 기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낯뜨겁지만 사실이다…

언론이 공공의 이익과 미래 가치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모든 행위가 우리의 생각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 진흙탕 싸움의 끝에 서서히 승자와 패자는 갈리겠지만, 그 저열하고 처절한 싸움의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질나쁜 컨텐츠와 뻔뻔한 장사놀음, 공해에 가까운 광고의 범람 뿐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KBS의 수신료를 둘러싼 힘겨루기가 번외경기로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 여전히 언제나 지갑을 열어 바치는 “영원한 호구“로 여겨지고 있는 셈이다. 광고도 유익한 정보의 한 종류로 자리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광고의 유통 구조가 균형을 잃고 왜곡되게 된다면,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매체 경험은 싸구려 이해관계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려버리게 될 것이다.

미디어렙범의 결과가 십여년 쯤 후에, 우리의 미디어 산업을 쌈마이로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고 기록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 법안의 처리가 남긴 것이 부끄러움과 몰염치, 타협과 무지의 소산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도대체 어떤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게 될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눈길이 서늘하고 무섭다.

………

[시선] ‘느리게 걷기’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

인터넷 세상 속에선 무엇이든지 빠르다. 

‘실시간’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무엇이든지 순식간에 나타나고,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긴 호흡의 생각과 통찰은, 머물러 있지 못하고, 눈길을 받지 못하고, 쉽사리 잊혀져 버린다. 
찬찬히 무엇인가 얘기할라 치면, 삽시간에 눈과 귀를 빼앗는 색다른 이야기에 금방 파묻혀버린다. 
“웹 2.0″의 시대라는 이야기들이 넘쳐날 때, 세 가지 키워드는 분명히 ‘참여’, ‘공유’, ‘개방’이었다. 
이 명제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함께 한다는 것, 나눈다는 것, 열려 있다는 것… 
이렇게 해석했다면 너무 이상주의적 시선이었을까? 
무엇인가 ‘가치 있는 것‘은 언제나 ‘권력’이 결정했다. 
그런 이유로 ‘힘’이 중요했고, ‘칼’이 세상을 지배했고, ‘수사법’과 ‘법률’, ‘군대’와 ‘정치’, ‘경제’와 ‘언론’이 세상을 뒤덮는 힘이었다. 그것들이 우리의 삶에 ‘가치있는 것’의 좌표를 찍어두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고, 잘 생겨야 한다고, 말을 잘해야 한다고, 지식이 많아야 한다고, 세련된 매너를 익혀야 한다고, 힘을 가져야 한다고… 
모두가 그 가치를 향해 달려갈 때, 잠시 멈추어 서거나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일은 위험해진다. 무엇이든지 빨라야 한다고 얘기되는 세상에 ‘천천히’ 생각해보거나 ‘느리게’이야기 하려는 욕망이 있다면, 무시당하고 잊혀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혀 이야기할 때, 찬찬히 하나 씩 되짚어 보며 이야기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의문을 제기하고, 반대 방향을 이야기 하고,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함께, 나누고, 열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생겨난다고 믿었다. 
대화(dialogue)는 ‘상대방’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상대가 들어주고, 반응하고, 물음을 던지고 할 때, 비로소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의미의 ‘대화’가 성립되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리 높혀 이야기하는 것은 대화의 방식이 아니다. 
사람들이 ‘광고’를 재미있어 하면서도 본능적인 염증을 내비치는 까닭은, 광고의 이야기가 본질적으로 ‘바라는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조작된 이야기‘라는 걸 대다수의 사람들이 깨우쳤기 때문이다. 하루에 접하는 광고 메시지가 모두들 일정한 크기의 소리를 낸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아마도 잠실 야구장 속에 들어앉아 평생을 사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그 뜨거운 열기가 때로는 멋지게 느껴지긴 하겠지만, 우리에겐 잘 인식되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블로그가 매력적이었던 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파워 블로거’라는 무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퉁할 것 같은 몇 몇 사람들을 만나 한가로운 농담같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법에 대해서 엿듣기도 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동네의 이야기을 귀동냥하며, 소박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 홈페이지가 한 때의 추억과 낭만을 남기고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버렸듯, 우리에게 블로그는 목소리를 높여 방문자를 붇들고 떠들어야 하는 호객행위의 장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다. 한정된 키워드로 검색되는 블로그 검색결과 페이지는 몇 몇의 영향력있는 소수의 포스팅으로 뒤덮여버리고 만다. 도저히 사업적 가능성을 못 만들고 빈사지경에 빠져버린 메타블로그들은 차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짐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제품 리뷰와 기획된 연예계 뒷담화를 앞면에 달아주고 있다. 그리고 슬쩍 끼워넣은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가치조작된 이야기들… 
올블로그에서 ‘블로그‘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더니 결과가 이렇다. 

228,856건의 검색 결과 중 ‘아이폰/iPhone’이라는 키워드를 가진 포스팅이 첫 페이지에 15개가 나열된다. (2009년 01월 29일 올블로그 : http://search.allblog.net/?keyword=블로그&view=issue&type=undefined
아이폰이 들어가지 않은 포스팅은 딱 5개가 있고, 그나마 아이폰/iPhone이 언급되지 않은 첫번째 포스팅은 “블로그로 돈이 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그리고 그 옆에 “또 다른 블로그 스피어의 이슈”라는 제목을 가진 오른쪽 글 목록엔 “iPad/i PAD의 상표는 이미지 후지…”, “아이폰/스티브잡스가 걸어온 길”, “아이패드/스티브잡스가 걸어온 길”, “애플/연락처에 아바타 그림을 추…” 이런 제목과 기사 목록이 뜬다. 아무리 아이폰(iPhone)과 아이패드(iPad)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이야기라고 해도, “블로그”라는 광범위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검색 결과 페이지를 이렇게 독차지 하고 있는 현상이 그리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올블로그의 가난함이 이런 결과를 낳았겠거니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밀려온다. 돈을 벌어들이지 못하는 서비스는 지속될 수 없다. 여러 블로그의 이야기들을 엮어내 가치를 만들어내고, 그 가치를 재화로 벌어들여야 하는 서비스 채널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히 이런 유혹과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현혹에 의연하려 생각하는 순간, 아마도 그 서비스는 조만간 서비스 중지 사과문을 내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에도 밝은 빛이 비쳐지는 ‘주목받는 곳’과 알려지지 않은 ‘그늘진 곳’이 공존한다. 하지만 이 열린 소통의 장에 나선 이유가 누군가와 만나고, 이야기 하고, 나누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그 소수의 사람들…, 느리게 걷고, 조근조근 이야기하고, 자신의 세계를 지켜려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블로그’라는 공간이 그런 아담한 세계가 지탱되는 곳이라고 믿었다면… 아직도 나는 이상적 낭만주의자에 불과한 걸까? 

[발언] 유행이 되는 블로그 마케팅을 의심해보자

@ 유행이 되는 블로그 마케팅을 경계함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말이 유행인가 보다. 이와 관련된 글도 많아졌고, 사람들의 관심도 한결 높아진 걸 느낀다. 하지만 블로그의 다양한 양상 중에서 ‘마케팅’이라는 용어와 결합된 일련의 변신은 적지않은 우려를 갖게 한다. 모든 변화의 시기에는 수 많은 억측과 잘 못된 이해가 넘쳐나게 마련이므로, 블로그에 대한 열광적인 기대감도 삐딱한 암울한 전망도 그리 탓할 도리는 없다. 하지만 몇 해 전 ‘웹(World Wide Web)’의 요란한 등장이 허황된 전망으로 위태롭게 부풀려졌던 것처럼, 블로그의 미래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불길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 같아 두렵다.

웹 사이트의 전례에서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블로그의 경우에도 반복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너무 짧은 시간 동안 검증되지 않은 가설들이 사업 모델로 꾸며졌고, 언제인지 기약하기 어려운 가능성조차도 당장 실현 가능할 것처럼 예언되던 씁쓸한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신중하게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시간을 갖고 바라보았으면 한다. 블로그가 먼지 쌓인 폐품이 된 ‘개인 홈페이지’의 운명을 답습하지는 않았으면 하기 때문이다.

@ 블로그가 약속하는 장미빛 미래는 어디에?

블로그는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뉴미디어의 하나일 뿐이다. 이 도구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하게 말하기에는 이른 편이다. 가장 앞서가는 조직이라고 하는 기업들이 회사 블로그에 대해 아직도 어떤 정책을 세워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몇몇 혁신적인 기업들이 블로그를 도입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은 회사 블로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기업활동에 적용할지 분명히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업 블로그들에 대한 시선은 이미 불신과 의혹으로 채워지고 있는 형편이다(아래 링크 참조)

**물론, 몇몇 의미 있는 성공이 고무적인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논점은 블로그의 가능성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의구심 섞인 시선’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블로거가 또는 블로고스피어가 언제 장미빛 미래를 약속했던가?

블로그의 가능성에 대해, 특히나 마케팅의 도구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열을 올리는 쪽은 광고, 홍보, 마케팅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다. 재미 삼아, 혹은 스스로의 정리를 위해, 혹은 자신의 일에 대한 직업적 역량 증진을 위해 묵묵히 포스팅을 하고 있는 블로거들은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파워블로거’니 하는 수식어로 무대위로 끌어올리려는 사람들 또한 크게 보아 ‘마케팅’영토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블로그를 마케팅에 도입하려고 안달하는 걸까? 그들은 정말로 블로그가 새로운 마케팅 패러다임의 문을 열어젖힐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걸까?

그들은 블로그의 잠재력 속에서 마케팅의 도구로서 활용될 수 있는 힘을 꺼내어 쓰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조급하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는 사실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블로그를 통해 다채로운 활동을 하게 된 연후에 시도되어도 늦지 않을 다양한 기법의 ‘마케팅 활동’이 블로그 자체에 대한 신뢰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 마케팅”이란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그 어떤 인기 검색어 보다도 많은 수의 스폰서 링크가 걸려있고, 그들은 하나같이 장미빛 성공을 손짓한다.

  • 블로그 및 카페마케팅 운영 대행전문, 11만원 저가형부터 기획맞춤형까지
  • 블로그마케팅, 소호족 위한 월49만원으로 블로그마케팅 1개월완성
  • 종합광고대행사, SNC마케팅 전문회사, 전략적인 블로그마케팅 제안 및 운영관리
  • 메인노출다수, 바이럴 전문, UCC, 동영상, 블로그, 카페, 통합바이럴
  • 효율이 높은 바이럴 마케팅, 블로그 및 커뮤니티 마케팅 전문 기업
  • 블로그 마케팅, 포스팅 개별 로그분석, 전문 블로거 작업, 블로그 상위노출
  • 블로그마케팅 전문업체, 배너광고, 수익금지급, 블로그등록 안내

위 문구들은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된 광고 대행사들의 광고 문안들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이런 물음을 던진다.

“요즘에 많은 블로그를 통해서 상업적이거나, 또 홍보성이 짙은 게시글을 자주 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일종의 마케팅이다 라고 하는데요.   

과연 블로그마케팅 이란게 이런 의미로 밖에 해석할수 없는건가요?   

사람들에 눈을 현혹시켜서 게시자가 원하는대로 끌어들이는 것이 블로그마케팅일까요?   

왜, 블로그를 보고 방문자가 스스로 한번이라도 기억할수 있게끔 강한인상을 남기진 못하는걸까요?”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4&dir_id=408&eid=ilqZFQA+zcCsuNtlq1z8x5xwkXDzfB/E&qb=uu23zrHXILi2xMnGww==&pid=fRi20doi5URssZE8fSGsss–474025&sid=SUZ2FvJwRkkAAHayDmA)

@ 아무 것도 입증된 것은 없다!

마케팅은 시장(말 그대로 마켓)을 겨냥한 활동이고, 그 출발은 공급자간의 경쟁에서 비롯된다. 거칠게 이야기 하자면, 공급자간의 경쟁 우위를 점하는 전략과 방법론을 다루는 것이 바로 마케팅의 본질인 것이다. 광고는 언제나 “나를 사라!(Buy me!)”고 외친다. 마케팅 활동은 다가가야 할 고객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고, 경쟁자보다 앞서, 경쟁자보다 강력하게 자신의 약속(‘고객 혜택’)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예민하게 시장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새로운 무언가가 주목을 끌면, 마케팅 전문가들은 일제히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분석해보고 요긴하게 활용할 방법을 찾아낸다. 블로그도 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만 문제는 블로그가 그들의 입맛에 맞는 ‘효과’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지는 않고 있다는 점이다.

마케팅의 전장은 언제나 수치로 환산되고 평가된다. 측정될 수 없는 효과에 대해 마케터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측정될 수 없는 것은 관리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활동에 블로그는 어떻게 동참할 것인가? 블로그가 측정될 수 있는 무엇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말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블로그에서 측정 가능한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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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치들 중에 마케팅 활동에 의미 있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각각의 지표는 나름대로 해당 블로그의 활동성과 관심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중에서 어떤 지표가 블로그 고유의 가치를 표상하는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연구된 결과도 증빙된 자료도 없다. 마치 인터넷 빅뱅의 시절에 모두가 홈페이지를 만들고, 홈페이지 하나 없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기업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무엇이 좋은지 어디에 쓸지도 확실치 않으면서 일단 만들고 보자 식의 시행착오가 다시 되풀이되는 것만 같다.

기업의 투자는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뒤쳐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짓눌러서는 곤란하다. 또한 분명한 목적 없이 유행처럼 만들어졌다, 모두에게 환영 받지 못하는 쓰레기로 버려지는 블로그를 양산하도록 부추겨서는 곤란하다. 검색 사이트의 목록의 제일 위쪽에 노출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루 방문자 수가 1,000명이 넘어 소위 말하는 ‘파워블로그(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기업 경영에 무엇을 달라지게 하는가? 특정 키워드를 통한 유입이 늘어났다는 것이 그 기업의, 브랜드의, 개인의 영향력과 관심도를 유추해낼 수 있는 지표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위 목록 중 기존의 웹사이트와 다른 측정 지표를 갖는 것은 거의 없다. 웹 사이트의 로그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들은 그저 통계적 경향성에 불과할 뿐이라는 건 이미 통설이 되고 있다. 사이트 운영 보고서에 담긴 로그 분석 자료가 단 몇 초의 관심도 받지 못하게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 블로그 운영에 대해서 그 가치를 평가한다면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 블로그 마케팅이 아닌 블로그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는 이유

블로그의 가능성은 ‘상호 소통’과 ‘관계 맺음’에 있다고 믿는다. 상호소통의 질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단 말인가? 좋은 관계라는 것은 어떤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좋은 사람들과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반가운 표정, 세심한 관심, 친절과 배려,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도움, 지혜로운 충고, 따듯한 격려… 이러한 경험들은 그 상대와 내가 좋은 관계이고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지표들이다. 하지만 이 지표들은 직관적 인식으로 알 수는 있어도 그것의 정도를 수치화하여 평가할 수는 없다.

미래의 어느 날에는 ‘좋은 관계’에 대한 분석-측정 모델이 등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지표와 평가모델이 정립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 ‘블로그 마케팅’을 논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말하고 싶다. 꾸준히 블로고스피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행동 모델의 의미를 읽어내고, 예측하고,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기법이 나올 수도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을 보장해드린다”는 소위 블로그 마케팅 전문 기업들의 선전문구들이 또 다른 광고판으로 전락해버린 ‘죽은 블로그들의 무덤‘을 양산하는 것이라면 제발 말리고 싶다. 당분간 블로그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키워드 광고나 온라인 디스플레이 광고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수익을 낼 수 있지 않느냐고… 그래도 가능하다면 제발 ‘블로그 마케팅’이라고 말하지 말고 ‘블로그를 통한 인간적인 교감’이라고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생각] 블로그 생태계의 적조현상, 광고 포스팅

적조(赤潮)는 “토양이나 하천·바다의 부영양화(富營養化)로 해수 플랑크톤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여 적색계통의 색을 띠는 현상
(출처 : 다음 백과사전 – 적조현상)“을 가리킨다. 플랑크톤은 수 많은 바다 생명체의 먹이가 되는 바다 생태계의 기반을 이루는 존재이다. 하지만 특정한 요인에 의해 플랑크톤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게 되면, 이들이 내뿜는 독소가 바다 생물의 신경을 마비시키기도 하며, 부영양화를 이룬 유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일시적인 산소부족 증세를 일으키게 된다. 일단 적조가 발생하게 되면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하며 해안가에서는 새나 사람들에게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단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그 영향은 거대한 재앙으로 작용하여 그 체계내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무서운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금 블로그 생태계는 이러한 위험한 적조 현상을 예비하고 있다. Google의 ADSense로부터 조용히 시작된 블로그 내 광고 게재는 블로그의 잠재력이 주목 받으면서 동시에 ‘변종 광고’의 이상증식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콘텐트 매칭(matching) 광고’라는 컨셉으로 광고를 일종의 콘텐트로 수용할 수도 있는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예 광고를 싣기 위해 콘텐트를 무작위로 찍어내는 블로그들도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말하자면 광고와 기사가 혼동되는 현상을 심심찮게 보이던 신문이나 잡지의 병폐가, 벌써부터 블로그 생태계에도 적잖은 사례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블로그 생태계가 완전히 성숙되어 충분한 자정기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온갖 기기묘묘한 마케팅 기법으로 무장한 광고 상품들이 이상 증식하게 된다면, 이제 막 대중적 지지와 신뢰를 얻기 시작한 블로그 미디어의 위상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그 영향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광고를 무작정 멀리한다는 것도 해법은 아닐 것이다. 미디어 산업에 있어서 ‘광고’라는 것은 바다의 플랑크톤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미디어의 생존 방식은 두 가지 형태로 유지된다. 첫째는 생산된 콘텐트에 대한 구독료( 또는 수신료)를 받거나, 콘텐트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대신 그 콘텐트의 특정 영역에 광고를 노출하는 방식이다. 신문이 ‘매스미디어’의 전범을 만든 이래로 이러한 미디어 생태계의 기본 구조는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신문, 잡지, 라디오, TV 같은 오랜 미디어는 물론, 인터넷을 필두로 한 뉴미디어 세계에도 광고는 저렴한 또는 무료로 콘텐트를 유통시킬 수 있게 하는 유력한 기재로 군림하고 있다. 바다 생명체들이 플랑크톤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먹이사슬로 하여 지탱되듯, 수 많은 미디어들은 많건 적건 광고주들이 내민 광고 수입에 의존하여 생존해간다. 적절한 균형을 이룬다면 광고는 블로그 생태계를 살찌우고 그 구성원의 왕성한 활동을 뒷받침하는 유용한 기반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법을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초창기에 최초의 배너 광고가 나타났을 때, 광고는 비전에 불과한 수 많은 인터넷 사업들을 현실화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사이트의 방문자 수는 광고 단가로 계산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회원 수는 광고 구독자 수를 의미하게 되었다. 새로 등장한 매체인 인터넷에 게재되는 광고는 상대적으로 주목도나 반응률이 높아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 매체의 성장은 앞선 어떤 매체보다도 빠르게 커져갔고, 그 만큼 성숙된 생태계 균형을 찾기도 전에 광고로 도배되다시피 한 일종의 ‘적조현상’을 겪게 되었다. 콘텐트보다 광고의 면이 훨씬 커져갔고, 화면을 아예 덮어버리거나 광고 재생이 끝날 때까지 사용자를 꼼짝없이 붙들어 두는 광고상품도 등장한다.[footnote][각주] 상대적으로 역사가 긴 이메일도 이 즈음부터 ‘스팸’이라는 반갑지 않은 유해생명체(?)가 이상 증식하기 시작했다. 사이트 운영자들을 지금까지도 괴롭히는 문제는 수 많은 필요가 요청되는 ‘팝업’의 문제이다.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담아야 하는 정보와 노출되기를 원하는 광고는 넘쳐나기 때문이다.[/footnote] 이 문제가
지금도 말끔히 해결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신뢰성을 인정받는 매체의 경우, 광고와 콘텐트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하고 광고는 광고임을 분별할 수 있는 표시를 달아두는 노력을 한다. 매체로서의 생명력이 콘텐트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 있음을 경험적으로 깨우쳤기 때문이다. 광고를 노출시키는 기법에 있어서도 사용자의 선택권을 배려한 여러 가지 기능(팝업 차단 기능, 소리 조절 기능, 사용자 반응에 따라 재생되는 동영상 등)이 도입되고 있다. 말하자면 인터넷 사이트는 이제야 광고를 다루는 일정한 자정기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막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블로그 미디어도 광고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제는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광고란 어떤 형식과 틀을 가져야 하는지, 광고와 콘텐트의 경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치는 어떻게 평가하고 값을 매겨야 하는지 등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의 필요성은 몇몇 블로그 사업자들이 시도 하고 있는 서비스 모델을 지켜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블로그 코리아(www.blogkorea.net )는 ‘블로그 뉴스룸&리뷰룸’ 메뉴를 선보이면서,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제공되는 이른바 ‘블로그 보도자료’를 블로거들과 매칭시키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뉴스와이어 같은 보도자료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홍보를 원하는 측에서 제공한 소스를 근거로 포스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프레스 블로그(www.pressblog.co.kr)의 경우 ‘정보레터’라는 형식으로 일정한 보상을 전제로 한 뉴스 소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블로거들을 위해 해당 제공처의 로고 이미지, 상품/서비스 이미지, 동영상 소스 등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올블로그(www.allblog.net)를 운영하는 블로그칵테일의 경우, 위드블로그(http://withblog.net/beta/)라는 블로그 마케팅 서비스 플랫폼을 시험운영 하며 블로거의 독립성과 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블로그를 정립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어떠한 성과와 문제점을 드러낼지 지켜볼 일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기사소스를 그대로 편집도 하지 않고 게재하는 블로거들도 나타나고 있다. 보도자료를 그대로 기사로 실어버리는 무책임한 기자의 행태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샘플이나 기타 대가를 제공받으면서 그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제품 리뷰나 사용기를 올리는 블로거들도 존재한다. 그러한 행동이 미칠 영향에 대해 일정한 가치기준을 제시할 ‘데스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도 하겠지만-필요하지도 않겠지만…- 블로그 생태계를 위협할 ‘광고 포스트’들이 손쉽게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광고도 유용한 콘텐트가 될 수 있음을 부인하는 건 아니지만, 생산적인 노력 없이 제공된 콘텐트 소스들을 편하게 복사하여 실어 나르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신중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넘쳐나는 쓰레기 콘텐트들로 인해 그토록 원하는 광고 유치마저도 여의치 않게 된 사이트들의 사례를 돌아보자. 서비스 사업자들은 이들에게 제공되는 보상체계가 어떤 결과를 유도할지 책임 있는 자세로 서비스 설계를 해야 한다. 기업과 기관은 블로그를 광고나 홍보의 수단이 아닌 ‘소통’의 공간으로 접근해주었으면 하고 희망해본다. 블로그의 신뢰도를 위협하는 광고 포스트들은 블로그 생태계의 힘으로 자정 되어야 한다.

‘우리의 미디어(We Media)’라는 블로그 생태계는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질서해지기도 쉽고 안정된 균형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살피고, 암묵적인 공통의 가치 기준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 광고라는 양날의 칼을 어떻게 쓰는지는 우리가 디디고 있는 블로그 생태계의 ‘문화의 힘’에 달려있다.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공존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독백처럼 이어가고, 누군가는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광장을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는 광고와 마케팅의 도구로서 블로그를 이용하여 살아갈 수 있으며, 건강하고 생산적인 미디어 환경이 정립되기를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