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014,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이 도시의 한 복판을 지나다보면,
잔뜩 부풀려져 터질 것 같은 욕망이, 두려워진다.

채워지지 못한 갈망이,
닿을 수 없는 부러움이,
초라해져버린 좌절이,

위태롭게 횡단보도 맞은 편에 서 있다.

무엇이든 부딪히면 부숴버리겠다는듯,
잔뜩 힘을 주어 우악스럽게!

[짧은 생각] 2013년의 보름을 빈 칸으로 보내고

바쁘고 분주했던 연말 연초를 보내고, 여전히 정신없이 해야 할 일들에 쫓기든 달려나가다가, 문득 멈추어 서서 내게 묻는다.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주인은 나”라고 하지 못할 것 같다. 해야 할 일들과 지켜야 할 자리를 채워나가는 데도 급급한 일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을 일구어나가는 걸음을 아직 한 발 내디디지 못한 느낌이다.

Footsteps

하루하루를 빈 칸으로 흘려보내는 어리석음을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다. 걸어온 길들을 돌아보면 왠지 황량한 느낌이다.

채우고, 돌보고, 가꾸는 예쁜 정원 같은 삶을 만들고 싶다.

전략가의 운명 : 그의 전략과 운명을 함께하는 모사들 – 주유

전략을 조언하는 신하를 모사라고 부른다. 삼국지에는 수 많은 모사, 즉 전략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자신의 전략과 함께 운명을 함께 한다. 그들이 세운 전략의 틀거리를 오늘날의 용어로 보면 “패러다임”이라고 할수 있다. 제갈량의 삼국정립은 그의 등장과 함께 시작하고,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제갈량을 만나는 노숙과 주유

노숙이 주유에게 제갈량을 소개하는 이 장면에서 삼국지 속의 세 나라, 위, 촉, 오의 복잡다단한 협력과 견재, 갈등과 배신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그들은 저 마다의 비전과 저 마다의 전략을 품고 서로를 만났다. 주유가 적벽에서 조조를 물리치고, 제갈량을 견재하는 데 성공했다면, 혹은 그의 두려움이 부추겼던대로 제갈량을 제거했다면, 노숙이 그런 주유를 만류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삼국지는 절묘한 균형의 드라마가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주유의 죽음은 어찌보면 이 드라마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수순처럼 보인다. 그가 그린 세계는 제갈량이 그린 삼국정립과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강력하고 필연적인, 혹은 그런 힘을 담은 전략과 구상은 그에 맞서는 전략과 함께 그 전략의 창안자도 무너뜨린다. 주유는 그렇게 가장 극적인 승리의 순간, 생을 마감하게 된다.

뒤돌아보기를 멈추고, 앞을 내다보려 눈을 들다

지난 해 말, 올해 초에는 개인적으로 아픔을 주는 일들이 겹쳐서 한동안 침잠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혼란이 도무지 가라앉질 않아 주변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겨우 호흡을 고르고 세상을 살펴보니, 그 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네요.

방송관계법 개정 소식은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킬만 한 일인데도, 뜻 밖에 지금은 조용해진 것 같군요.
흉흉한 연쇄살인 사건 때문일까요? 꽁꽁 얼어붙은 살림살이 때문일까요? 미래에 닥칠 커다란 영향에 대해 우리 모두가 짐짓 너무 모른체 하고 넘어가는 건 아닐까요? 좀더 생산적인 치열한 논쟁을 기대해보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털고,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대신 한 발 더 부지런히 디지털 생태계의 움직임을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생각] 내키지 않던 일에 대한 단상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손을 댄 것이 잘못이었던 것 같다.

‘Blink’라고 하던가? 마음 속에서 어떤 신호가 내키지 않는다고 경보음을 울렸다. 호의로 애써 배려하는 것을 뿌리칠 수가 없었고, 회사를 빨리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그 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짧은 직감이 이야기하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희미한 경고의 외침이 있었지만, 나는 그만 욕심에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다. 힘겹게 거친 파도를 헤치고 가는 조각배 같던 회사에 얼마간의 피난처를 제공해줄 수 있는 손길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창조적인 에너지로 재미있게 일하겠다는 생각으로 D&A를 시작했다. 자리를 잡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고통스럽고 마음이 힘든 일들을 많이 겪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지 못했던 건 내가 그 입맛 쓴 경험을 견디어낼 준비가 되어 있는지의 문제였다.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회사에 몸담고 있으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개인적인 굴욕도 감내하였고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일도 견뎌냈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비즈니스의 세계란 때로 냉혹하고 잔인하며, 잘 알던 사람들의 얼굴이 달라져 보이는 경험을 준다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스스로 회사의 얼굴이 된 상황에 대해서 나는 오히려 냉철하지 못했다. 어찌 보면 스스로를 위한 일일 수도 있는 선택을 두고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 못난 모습이었지만,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자존심을 세우고 싶었던 것인지 모른다.

원칙을 지키며 산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주고 받고 각자 그 거래를 통해 이익을 얻는 거래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상생의 길, 파트너십, 동반자 관계라고 이야기하지만, 회사와 회사의 거래는 어느 편의 이익이 될 것이냐는 치열한 셈이 있게 마련이고, 힘의 논리로 우월한 눈높이와 보이지 않는 강권이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조그마한 사무실, 적은 사람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자본… 이 모두는 결국 회사의 얼굴로서 내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데 왜 그 몫을 해내지 못했을까? 마음 속에서 내 자신에 충실 하라는 외침이 요란하게 울렸다. 굽히는 일이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처지에 따라 재설정되는 인간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편안한 얼굴로 자존심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지 못했던 것이 이해는 될 수는 있겠지만, 조금 더 냉철하고 차분하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처신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거래에는 앞으로도 응하지 않을 작정이다. 원칙은 지키기가 어렵고 한 번 허물면 그것으로 회복할 수 없는 이지러짐을 당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회사의 성장이 더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정직한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어렵고도 긴 여정이겠지만 끝내 원칙을 지켜낼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수완 좋은 장사치는 내게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 않은가? 사람을 남기는 좋은 장사꾼이 되겠다던 허황된 믿음을 다시 돌아본다.

[낙서] 장마, 그리고 욕심의 바다

비가 쉬지않고 내린다. 길 위로 물이 둥둥 떠다니며 흙탕물이 소용돌이 친다. 물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있다. 꿉꿉하고 질척질척한 길 위에 서서 파란 하늘을 마음 속에 품어 본다.

마음에 끼인 허튼 생각들이 속을 쓰리게 한다. 왜 이리 되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고 불편한 진실에 다가가게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본래 그런거야” 하며 위로를 삼는다. 헤아림이 부족했다고 되내여보지만, 아직도 이리 사람을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에 아연함을 느낀다.

사람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이다.

[혼잣말] 4년 2개월의 일터를 돌아보며 남겨지는 회한, 그리고 다짐

 애써 의연하게, 태연하게 나의 몫을 마무리하고 있지만, 지난 세월 정성을 쏟았던 사람들의 기억 때문에 죄스러움을 느낀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들을 힘들게 하였던고? 끝내 다다른 곳은 넘을 수 없는 불신과 허망한 신기루 뿐이었던 것을…

하지만 디디고 다시 시작하려 한다. 할 수 있는 한 정직할 것이고, 굳고 단단한 믿음으로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다. 행복한 일터를 가꾸는 방법에는 다른 사잇길이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에겐 그 믿음 외에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이 무모하고 이길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버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의 의지가, 나의 건강이, 나의 유능함이 이제는 허약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본 뜻에 충실하여 나의 길을 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