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 글] 너의 그릇은 그 물을 다 담을 수 있느냐?

[웹 마스터의 길닦기] 너의 그릇은 그 물을 다 담을 수 있느냐? 웹 마스터의 길닦기

2007/07/08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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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일을 하다가 보면 마치 벽처럼, 아니 속도를 높여가면 느껴지는 공기의 저항처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게 되는 힘겨운 순간이 오게 마련이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사람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사람이 가장 어렵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람에 한창 지쳤을 때, 마치 망명이라도 가듯 숨어지내던 곳이 인터넷이었다. 그 때만 해도 아주 적은(?) 사람들이 친절과 겸손과 열정을 다해 네트워크를 가꾸어가던 시절이었고, 이상향처럼 잘 가꾸어진 사회가 성숙해가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사람에 대한 희망을 되찾곤 했다고 기억된다. ‘사람’이 전공이고, ‘사람’에 모든 것을 걸고 그것을 파헤치는 것을 소명으로 삼던 시절, 네트워크는 차라리 쉽고 편안했던 것이다.
 
십 여년의 세월이 흘러, 순수한 취미와 관심이 어느 덧 직업이 되어버리고, 원시림처럼 아늑하고 비밀스럽던 네트워크 세상은 테마파크처럼 변신해서 온갖 번잡스러운 것들로 가득차 버렸다. 꿈도 많고 나름 열정적이던 청년은 지치고 의구심 많은 중년의 회의주의자가 되었다. 아직도 사람을 믿느냐? 한 때 영혼의 기둥처럼 받치고 있던 소신이 깊은 화두가 되어 돌아왔다. 경험이 지혜를 기르고 버티는 힘을 주는지는 몰라도, 맑고 투명한 눈과 곧고 바른 생각을 흐리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새로운 소식은 ‘경탄’ 스럽다기 보다는 ‘아연한’ 동공의 확장을 가져온다.
 
지치고 지혜의 부족을 느끼면 옛 책을 뒤져 마음을 다듬으려 한다. 그나마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셈이 너무 빠른 이 곳’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 때문이다. ‘팀 사부’께서 일갈하신 ‘Web 2.0’1) 도 하나의 브랜드로 치환되어 그 정신은 간데없고, ‘최신의’ 또는 ‘새로운’, ‘혁신적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선전문구로 퍼져나가고 있다.2) 누군가의 말 마따나 너무나 어지러워,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고 외치고 싶어진다.
 
변화는 이토록 빠르건만 정작 ‘사람’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변화의 물결이 거세던 때에는 언제나 그 변화를 거스르려는 시도가 있고, 소극적으로는 그 변화에서 도망치거나 숨어버리고 싶은 소망을 품는 이들이 있게 마련이다. 웹 쟁이들이 머무는 이 바닥은 도대체 멈추는 법이 없다. 잠시만 딴 짓을 해도 바보 취급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모두들 깊은 성찰 보다는 변화의 앞머리를 타고 내달리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재주가 웃자라면 그 열매에 독이 들게 마련이다. 옅은 지식을 밑천삼아 말을 휘두르다 보면 발 밑이 아뜩해지는 추락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 어지러움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옛 성현은 물의 덕을 닯으라 하는데, 그 처럼 다투지 않고, 낮은 곳에 몸을 두고, 맑고 바르며 고요하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의 그릇이 이 물을 다 담을 만큼 넉넉하다면 좋으련만, 나는 쉽사리 어지러움에 마음을 빼앗기고, 쉬이 성을 내고, 공을 다투어 내것으로 하고픈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장식이 적고 꼭 필요한 것만을 채워 사람들을 이롭게 할 만큼 넉넉하고 생각 깊은 그런 ‘그릇’을 가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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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웹 2.0에 대한 팀 오라일리의 정의에 관한 문서 : http://www.oreillynet.com/pub/a/oreilly/tim/news/2005/09/30/what-is-web-20.html
2) 도대체 ‘엔터프라이즈 웹 2.0’이라는 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심지어는 ‘마케팅 2.0’이라는 단어도 서슴치 않고 떠돌아 다니고 있다. 저주받을 지어다 개념의 사기꾼들이여~~~!

[옮긴 글] 사이트 성공의 지표에 대하여 (1)

[웹 마스터의 길닦기] 사이트 성공의 지표에 대하여 (1) 웹 마스터의 길닦기

2005/04/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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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팟 기획실

임명재

 
지난 번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넋두리 처럼 주절주절 늘어놓다가 하고 픈 이야기들을 다 못하고 마쳤었다. 정말이지 하소연하고 픈 이야기들은 많다. 그렇긴 하더라도 별 해결점도 없는 푸념을 연이어 늘어놓는다는게 별로 탐탁치않은듯 싶어서, 이번에는 좀 쓸만한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어렵기만 하고 뭐 하나 딱히 쓸만한 이야기는 안 한다는 불평도 있고 하니 말이다.
 
웹 사이트의 ‘성공’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마치 대단한 비결이라도 이야기해 줄 듯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서는, 결국은 ‘마음 다잡고 열심히 해라’ 뭐 이런 말로 끝을 맺었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스스로 세운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충족시킬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외에 무슨 비결이 있을까만서도, 이번에는 조금 현실적이고 가깝게 와닿는 ‘성공의 지표’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1. 방문자(Visitor)
 
방문자는 말 그대로 특정 사이트를 찾아온 사용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방문자 수라는 것은 마치 현실 세계에서 특정 상점이나 공간을 찾아온 사람들의 수를 셈하듯이, 사이버 공간 상에서 특정 영역 – 이걸 편의상 웹 사이트라고 부르자-을 찾아온 사람들을 헤아리는 것이다. 초기에 웹 사이트에는 카운터(counter)라는 것이 달려 있어서, 방문자들의 수를 일일이 셈하여 입구에 그 수를 걸어두었었다. 당연히 웹 사이트의 성공 여부는 이 방문자들의 수를 가지고 길가름이 되었고, 일일 방문자 수가 ‘***명이다’ 하는 식으로 선전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었지만, 초창기에는 이나마도 상당한 기술력을 요하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개인 웹 사이트들마저도 카운터를 구현해보려고 열심히 소스를 뒤지고 다니던 매니아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순진한 허풍은 몇 몇 구루(Guru)들의 양심선언(?)으로 곧 유효성을 잃고 말았다. 방문자라는 개념은 구조적으로 매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망에서 유일한 식별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IP address일 것이다. 호스트와 호스트 간의 다중 접속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망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것은 203.249.***.*** 하는 식으로 이루어진 주소 정보인데, 최근의 IP 관리 현황을 보면 유무선으로 이루어진 수 많은 사설네트워크와 공유기 탓으로 IP 정보가 꼭 특정 호스트를 가리킨다고 보기도 어렵게 되어버린 셈이다. 거기다가 다중 사용자를 전제로 하는 실습실이라든가 PC방 등의 호스트들이 차지하는 숫자는 예전에 비해서 어마어마 하게 늘었다. 그러니 방문자라는 이름으로 셈하고 있는 숫자는 그야말로 참고사항에 불과한 숫자인 게 사실이다. 일 방문자 수가 몇 명이다 하는 정보는 단지 상대적으로 특정 웹 사이트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이 정도 규모구나 하는 정도를 짐작할 수 있는 눈대중 치수라고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숫자가 전혀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가 ‘시청률’이나 ‘구독률’이라는 것을 어떻게 집계할까 생각해보면 의문에 빠져들듯이, 통계의 현혹에 빠지지 말고 다른 여러 가지 지표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사이트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자는 것이다.

2. 페이지 뷰(Page View)
 
방문자라는 것이 특정 사용자의 개별성을 가늠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위에서 말한 참고적인 숫자의 의미에 충실하자는 개념으로 등장한 것이 ‘페이지 뷰’라는 개념이다. 페이지 뷰는 마치 신문을 읽으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는 지면의 수를 셈하듯이 특정 정보 영역을 하나의 단위로 하여 그 수를 헤아리는 셈법이다. 언뜻 보기에 따라서는 대단히 믿을만한 수치일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이 또한 사실상 참고적 지표에 불과한 것이다.
 
포털 사업자들 간에 순위경쟁을 벌이며 서로의 데이터를 놓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은 까닭도 바로 이 페이지 뷰의 산정 방식이 가진 모호성 때문인 것이다. 쉽게 생각해서 100페이지 짜리 국판 책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책자를 A4 판형으로 바꾼다면 페이지가 몇 페이지로 바뀔까? 또 같은 책자라 하더라도 그 안에 커다란 사진이나 그림, 도표들을 더 많이 넣는다면 페이지 수는 또 바뀔 것이다. 여기다가 광고라던가 간지, 삽화, 부록 등을 더 하고 빼느냐에 따라 책의 두께는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할 것이다. 즉, 페이지 뷰를 산정하는 데 있어서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셈하느냐에 따라 그 총 숫자는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업자들은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자신들의 사이트가 경쟁사에 비해 페이지 뷰가 높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긴 하더라도 이 숫자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인 건 확실하다. 아무리 이것저것 끼워넣고 셈하더라도 책의 양을 가늠하는 일정한 기준에 있어서는 ‘상식적인 선’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상용 로그분석기 또는 로그분석 서비스 사업자가 제공하는 페이지 뷰의 수치는 웹 서버의 로그를 분석하여 의미없는 데이터를 걸러내고, 중복 되거나 신뢰성이 떨어지는 값을 걸러낸 수치를 통계화 한다. 그러므로 이 숫자도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대체적인 활동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인 것이다.
 
3. 회원수(Member)
 
회원제는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달리 하고 특정 사용자들에게만 특정 영역을 개방하기 위한 용도로써 만들어진 개념이다. 다중사용자들이 컴퓨팅 자원을 공유하는 Unix와 같은 시스템 상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권한’이라는 개념이 웹 사이트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어서, 일정한 자격을 획득한 사람들에게만 특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회원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원제 기반 서비스 방식이 비즈니스와 결합하게 되면서 회원은 애초의 목적과는 다른 또 다른 의미를 가지도록 진화하게 된다.
 
인터넷 비즈니스라는 것이 등장을 하면서부터, 사이트의 활동성과 투자이익률(ROI)을 객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지 서로간의 필요에 의해 정보를 교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 망을 통해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수익을 얻으려는 사업자가 나타나게 됨에 따라, 사이트의 운영을 통해 일정한 결과를 객관화하여 경영활동의 지표로 삼으려는 욕구가 자연발생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경영자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페이지 뷰나 방문자 수는 도저희 경영의 지표로서는 사용할 수 없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통계였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숫자’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눈에는 몇 몇 사이트에서 채택하고 있던 회원제(membership)가 유력한 대안으로 생각될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회원으로 등록(register) 된 개개의 숫자들은 무차별적 다수가 뒤엉킨 방문자나 페이지 뷰 보다는 믿을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오늘 날 회원제는 나날이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실명인증제’가 당연시 여겨질 정도가 되었다. 개인정보보호라던가 정보 통제라는 이슈를 밑그림으로 하고 바라보면 거의 기절 초풍할 일이지만,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우리는 너무나 선선히 개인정보를 내주고 웹 사이트에 가입을 한다. 그 정보를 기초로 얻어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을 생각하면 절대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웹 사이트의 관리자들을 믿는 것이다. 그것도 100% 선량하고 정직한 관리자들만을 생각하면서…1)
 
어쨌든 덕분에 회원의 수는 상당히 믿을 만한 데이터가 된 것은 사실이다. 이젠 더 이상 ‘누가 누구(Who’s who?)’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들이 개발되고 있고, 여러 가지 암호화 기술, 보안 기술, 인증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인터넷은 점점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시스템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2) 그러므로 회원의 숫자를 기준으로 사이트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은 상당히 과학적인 지표가 된 것이다.

그러나, 회원의 수는 사이트의 활동성과 건강성을 보증해주지는 못한다. 은행에 휴면계좌라는 것이 잔뜩 있듯이, 모든 사이트들은 등록만 해놓고 거의 활동이 없는 휴면회원들이 매우 많이 존재한다. 관리자들은 이들의 처치를 놓고 고민을 한다. 상당량에 달하는 휴면회원의 정보는 관리하고 보존하는 데에 많은 자원을 소모하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숫자는 사이트의 성공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이기에 함부로 손을 대기도 어렵다. 게다가 ‘휴면’이라는 의미의 경계는 대단히 모호한 것이다. 언제고 사용자가 다시 방문하여 활동을 재개할지는 아무도 알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은 회원수라는 것은 웹 사이트의 특정 상황에서의 상태를 정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뿐, 이 지표를 근거로 사이트가 발전할 것이라든가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을 수 있다거나 하는 것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몇 가지 지표에 대해 더 살펴보아야 한다. 아직 절반도 언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글이 너무나 길어지고 있다. *.* 늘 이게 문제지만, 장담할 수도 없겠지만, 다음에 이어서 웹 사이트의 성공 지표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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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어주닌 고마울 따름이지만, 사실상 실명인증제를 통해 가입한 회원들의 정보를 관리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건 여간 신경쓰이고 부담스러운 일이지 않을 수가 없다.
 
2) 그렇지만 안심하지는 마시라… 실명인증과 같은 철통같은 방어선을 똟고도 신분이 조작되거나 오염된 정보들로 넘쳐나는 회원 데이터들이 생겨나게 된다. 데이터의 오염은 화분에 진드기가 끼는 것과 같다. 잠시만 방심하면 그토록 뿌듯하게 모아두었던 알토란 같은 정보들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실상은 사용자들은 웹 사이트의 관리자들을 100% 신뢰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도 모든 사용자들을 선량한 태도로 바라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옮긴 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1)

[웹 마스터의 길닦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1) 웹 마스터의 길닦기

2005/02/1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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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팟 기획실 임명재

웹을 다루는 사람치고 시간에 쫓기는 스트레스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에이전시에 있는 사람들은 늘 바쁘고, 분주하고, 정신없고, 그야말로 미친듯이 일을 하고 있다. 일정은 언제나 ‘Mission Impossible’이며 그나마 짜여진 일정도 제멋대로 바뀌기 일쑤다.
 
“다음 주 까지 끝내야 하는데 가능하죠?”
 
이런 말을 듣는 경우가 한 달에 두 세번씩은 꼭 생기는 것 같다. 가끔은 다른 판에서도 이런 말들이 거침없이 오고가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일이라는 게 사정이 생기다보면 어느 분야에서야 긴급상황이라는 게 발생하겠지만, 유독 웹과 관련된 곳에서는 이런 무대뽀식 일정가늠이 일상화된 건 아닐까 싶다.
 
모든 일은 시간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에 따라 일을 진행하지만, 계획은 여러 가지 변수들에 의해 수정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웹 분야에서 유독 그런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주장한다면, 아마 몇 몇 분들은 엄살이 지나치다며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웹 관련 일들이 유별나다고 우기고 싶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정말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만 같은 이 분야만의 부조리한 실상들을 되짚어보도록 하자. 시시콜콜이 꼽자면 끝이 없을 테니 많은 동업자들이 공감할 몇 가지만 꼽아보도록 한다.
 
1. 작업 기간이 짧아도 너무 짧다.
 
애초에 주어진 작업 기간이 짧다. 정보시스템과 연관 되는 웹 SI(또는 eBI) 성격의 일들의 경우야 다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는 편이지만, 회사 웹사이트나 브랜드 사이트, IR 사이트, 특정 프로모션을 위한 임시 사이트 같은 경우에는 길어봐야 1달 이내에 작업을 완료되도록 일정이 짜여지는 경우가 많다. 웹 관련 분야는 항상 광고나 마케팅, 영업, IR 등 회사의 핵심 사안의 부분이거나 하위 요소로 간주되는 경향이 강해서, 전체 일정을 수립하는 데 있어 웹을 위한 고려는 아예 생략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로운 브랜드의 제품을 출시하면서, 광고 촬영일 그 다음 주말에 제품 브랜드 웹 사이트가 런칭되도록 일정을 잡는 발상이 가능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게 그렇게 오래 걸리나…?”
 
이런 반문을 대하면 요술램프의 지니를 소개해주고픈 심정이 된다. 울고 싶은 데 뺨 맞는 격으로, 그 다음주에는 광고가 방영될 계획이라고 한다. 도대체 언제 시안을 잡고, 언제 검토를 하고, 언제 디자인하고, 코딩하고, 개발하고, 테스트를 한단 말인가!
 
2. 웹 관련 일은 수정이 쉽다고 여긴다.
 
이걸 1번으로 올릴까 하다가 애초의 태생적인 문제를 얘기해야겠기에 순서를 바꾸었다.
하지만 웹 관련 일들의 일정이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까닭은, 웹 작업 결과물은 수정을 하는 데 ‘몇 일이면 되지 않나?’ 하는 상식아닌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우리들은 그 몇 일 안에 수정을 다 해낸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테지만, 절대로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우리는 해낸다. 마치 건설사들이 뚝딱 몇 일만에 건물을 올리듯… 온갖 부실이 숨어있는데됴 그냥 넘어가는 것이다. 일단 보이기에 문제만 없으면 된다는 식이다. 일단 오픈해놓고 시간을 갖고 천천히 수정하면 된다는 게 거의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아니 웹 일은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인 듯이 여기는 관행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이 분야의 일은 너무 몰라서 또는 너무 잘 알아서 탈인 선무당들이 너무나 많기에 그들의 섣부른 판단이 재앙을 낳는 경우가 너무너무나 많다. 그 선무당들의 무계획과 무책임 덕분에 애꿎은 웹 디자이너와 웹 개발자는 허구헌날 밤샘을 하게 된다. ‘이거 내일까지 수정해주세요, 되죠?’ 하면, 우아한 백조처럼 ‘네… 해드려야지요.’ 하고 대답을 하고 미친듯이 물갈퀴질을 하는 것이다!
 
3. 알아서 다 해주기를 바란다.
 
계획을 수립할 때는 웹 관련 항목들은 수 많은 목록 중 저 아래쪽의 몇 줄에 불과한데, 일이 마무리 되어갈 때 쯤엔 온갖 문제점들이 집중되는 마루타가 되어 있다.
 
‘이게 왜 빠졌지?’
‘이건 컨셉이 잘 못 된거 아니야?’
‘이 카피 누가 쓴거야?’
‘아무리 봐도 약해…’
 
눈이 벌개져랴 작업을 하고 결과물을 가져갔을 때 이런 저주에 가까운 멘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진다. 억울함에 혈압이 높아지지만 꾸욱 누르고 회의록을 뒤적뒤적 해서 왜 이렇게 방향이 잡혔는지를 설명한다. 그럴 때면 거의 어김없이 결정타가 날아온다.
 
“아니 그런 건 알아서 해주셨어야죠?!”
 
어지러이 널린 회의자료, 스토리보드 들을 주어담으며 전화를 건다.
 
‘수정 사항이 좀 많아서요. 모두 기다려주세요. … 아무래도 밤새야 할 것 같은데요…’
 
웹 마스터는, 특히나 기획자는, 전략 기획에 마케팅에 광고 PR은 기본이고, 제품 카탈로그와 고객사 경영진의 취향까지 한 줄로 꾀차고 있어야 한다. 아니 그래야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식이다. 척하면, 줄줄줄줄 끝까지 모든 것을 알아서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쓰다보니 넋두리처럼 풀려가는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다음 편에 4가지 정도 이야기를 덧붙여 볼까 합니다.)

[옮긴 글] 성공한 사이트라는 것을 꿈꾸며

[웹 마스터의 길 닦기] 성공한 사이트라는 것을 꿈꾸며 웹 마스터의 길닦기

2005/01/1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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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팟 기획실 임명재

 
‘성공’이라는 말의 뜻은, “뜻한 바를 이룸”이라고 되어 있다. 새로운 기록을 수립한 운동선수의 환호라든지, 몇 년을 준비한 시험에 합격했을 때 흐르는 뜨거운 눈물이든지, 열심히 준비한 제안서나 시안이 통과되어 남 몰래 그러쥐게 되는 주먹이라든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끝내 달성해내는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러한 기쁨을 맛볼 수 있기에 성공은 ‘일을 하는 인간’을 위해 준비된 가장 값진 보상일 것이다.
 
웹 사이트를 만들고 가꾸는 웹 마스터들에게도 마땅히 ‘성공의 기쁨’이라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빛나는 업적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스스로 돌아보기에 자랑스럽고, 누군가 ‘야~! 이 사이트 누가 만들었을까?’하는 감탄이라도 흘려줄라치면 가슴이 뿌듯해지는 그런 경험이 있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묵묵히 돌아가는 웹 사이트들은 뭔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 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란 아주 드물다. 그리고 당연히 그 사이트들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렇다 말하는 법은 없다. ‘스타 웹 마스터’라는 수식어를 본적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낮이나 밤이나 웹 사이트를 만지작 만지작 거리는 사람들의 성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늘 조금씩 조금씩 어딘가가 바뀌어지고, 한 두 해만 지나면 완전히 다른 이의 손길로 뒤덮여버리는 웹 사이트에서 ‘나의 보람’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 수많은 사이트들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고, 그 누군가는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혹여나 궁금증이나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될까? 생각해보면 공연히 기운빠지고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 같다. 웹 사이트를 만드는 이들이라면, 한 밤중까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온갖 궁리를 하다가, 문득 이런 허망한 기분에 빠져 씁슬했던 기억이 한두번씩은 있을 것이다. ‘무슨 영화를 얻자고 이 난리를 치나…’하는 기분…
 
아마도 그 허망함은 웹 사이트라는 결과물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혹여 이따금씩 visual arts의 일부분으로 웹을 이용하려는 예술가들의 작품이라든가, 그러한 예술적 이상을 꿈꾸는 디자이너들의 개인 사이트들의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개성과 인격이 고스란히 담긴 ‘창조자의 체취’라는 것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의 주문을 받아 수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취향이 이리저리 합쳐져야 비로소 하나의 사이트가 탄생하는 것이 보통이기에, 만들어진 결과물을 바라보면 늘 아쉽고, 부끄럽고, 답답하고, 찜찜한 찌끼가 남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우리의 경험이다.
 
나의 생각이나, 나의 취향, 나의 가치관 같은 명제보다는 늘 고객의 가치, 고객의 요구, 고객의 고집(?)에 귀 기울여야 하고, 그에 충실해야 하는 우리들에게는(에이전시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기획을 하고 관리를 하는 웹 마스터들에게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들도 조직에 속해 누군가의 지시와 의향을 따라 자신의 기획을 뜯어고치기 마련이다) 만들어놓은 웹 사이트에 대해 ‘내 자식’같은 애착을 갖기란 정말이지 어려운 노릇인지도 모른다. 마치 내 자식을 남의 집에 입양시킨 것처럼, 만드는 이로서 어떠한 권리도 갖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데로 뜯어고쳐가다보면 흉칙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걸 그저 수수방관하고 있어야만 한다니…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들은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세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물건들은 가차없이 망치로 깨뜨려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들에게는 납품일이라는 건 도무지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느긋이 흙을 밟고 뭉근히 물레질을 한다. 얼마나 부러운 광경이란 말인가? 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자신의 모든 역량을 기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권리…장인(匠人), 즉 마스터라면 마땅히 이러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손길이 오랜 세월 가다듬어져, 마침내 공예품(craftwork)에서 예술품(fine arts)을 탄생시키는 순간 장인은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주문에 의해 장식품을 생산해야하는 직공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만들어 값을 따질 수 없는 찬사와 존경을 얻어가는 예술가가 되는 것… 그것이 장인들이 꿈꾸는 자유이지 않을까? 웹 마스터에게도 이러한 예술가의 자유(?)를 꿈꾸라고 한다면 아마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예술을 꿈꾸는 웹 마스터를 기다리는 것은 ‘시장(market) 추방’이라는 혹독한 형벌은 아닐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인의 솜씨를 기리고 그 가치를 온전하게 활용할 줄 아는 구매자를 꿈꾸어본다. 친밀하게 서로 존중하며 방향을 정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충분하게 시간을 쓰며, 정당한 값어치의 댓가를 치룰줄 아는 ‘진정한 파트너’를 만나, 그 동안 갈고 닦아온 솜씨를 한 껏 펼쳐보이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으면 한다. 그 다가오지 않을 꿈의 그 날을 기다리며, 도자기의 명인이 혹독한 자기 수련을 하듯이, 늘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며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몇 날 몇 일을 다듬고 매만진 그릇을 냉엄하게 망치로 깨어버리듯, 스스로 세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이트들을 용납하지 않는 그런 엄격함을 가졌으면 한다. 어느 분야에나 있는 소위 말하는 기본기라는 것조차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그런 사이트들이 세상에 더 이상 쏟아져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소원해본다. 그저 헛 된 바람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헛 된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함께 작업하는 동료들이 서로의 작업에 대해 한 없는 존경과 애정을 갖고 서로 도우며, 너그럽고 이해심 깊으나 굳고 엄한 기준을 서로에게 요구하는 그런 작업장을 꿈꾸어 본다. 일관된 명칭, 명료한 정보설계, 물 흐르듯 따라가게 되는 네비게이션, 깔끔하고 기능적인 UI, 독창적이며 개성넘치는 디자인, 에러없이 정갈한 코드, 그리고 사용자를 위한 다정다감한 배려와 위트… 이러한 요소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넘쳐나는 그런 사이트를 만들고 싶다. 서로의 개성과 가치관을 존경하며, 그러면서도 진정한 성공의 척도에 대해서는 양보할 줄 모르는 고집과 열정을 담아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그런 웹 마스터들의 아우라(aura)를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 

[옮긴 글] 사람을 키워야 살아남는다

사람을 키워야 살아남는다 웹 마스터의 길닦기

2004/06/21 00:40

복사 http://blog.naver.com/yimmj/100003430767

어느 분야에서건, 성실하고 진지한 재주꾼들이 많아야 발전을 한다. 소위 말하는 ‘우수한 인재’라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서로 배우고 경쟁하며 새로운 가능성들을 열어젖히는 역동성이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일의 개척기에는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이 온 힘을 다해 그 바닥을 이끈다. 그들의 노력은 눈물겹고 온갖 전설적인 상흔들로 기록된다. 그리고 또 쇠퇴기에 접어든 무렵에는 진짜로 몇 사람만이 남아 쓸쓸히 닥쳐오는 ‘사라져가는 것들’의 퇴색한 영광을 부여잡고 있기 마련이다.

이 바닥은 어떨까? ‘인터넷’이라고 포괄적으로 지칭된 ‘신세기’에는 각 분야에서 한 가닥 한다는 재주꾼들이 모두다 이 곳으로 흘러들었다. 솜씨있는 편집자들, 재기 넘치는 기획자들, 새로운 실험정신으로 똘똘뭉친 마니아형 디자이너들, 만능해결사처럼 보이던 개발자들… 그들이 무리를 이루어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거품… 그 거품이 꺼지면서 그들은 각자 자기의 길로 되돌아갔다. 인터넷에서 얻은 그 무엇과 또 씁쓸하 교훈 하나를 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이 속했던 분야를 살찌우러 되돌아갔다. 그럼 남은 이들은? 남은 이들에겐 화려했던 영광을 뒤로한 지리한 클라이언트와의 실갱이, 그리고 고독한 밤샘의 나날들이 주어졌다.

어느 분야나 힘들지 않은 곳 없겠지만, 이 바닥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다. 정말로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곳인지도 모른다. 거품처럼 화려했던 영광의 나날이 있었기에 견디기가 더 힘든 것처럼 보인다. 인터넷 강국을 만든답시고 여기저기 개설해놓은 사설교육기관들에서 붕어빵처럼 찍어내놓은 인력들 덕분에, 넘치는 사람 속에 질적인 발전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인기직종에서 ‘웹 디자이너’가 탈락한지 이미 오래이고, 스토리보드 한 두장 그려보고서 ‘웹 기획자’를 자처하는 젊은 친구들이 넘쳐나고 있다. 진정코 이 바닥이 이렇게 아무나 들락날락거리며 밥빌어먹는(?) 곳이 된 것일까? 고등교육받은 실업예비군들이 만만하게 찝적거려보는 학원가를 보면서 가슴이 답답하던 게 엇그제 같은데, 어느 덧 이 바닥도 만만해져버렸단 말인가?

그러면서 한 편으로 반성을 한다. 제대로 방법론에 대해 고민하고 정리해보려 한 적이 있던가? 노하우라고 할만한 것들을 다듬어본 적은 있던가? 프로젝트 하나라도 성실히 처음부터 끝까지 분석해보고 복기해보며 성공 요인을 찾고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 애써보았던가? 어떤 사이트가 왜 좋은 사이트이며, 그 ‘좋음’을 가름하는 요소에 대해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확립시킨 잣대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하나 알고 있는 것이라도 후배들에게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을 묻고 배우려했던가?

이 바닥은 이렇다. 일주일 만에 제안서 내고, 열흘 만에 시안내고, 한 달 안에 오픈시켜야 하고, 덜 중요한 것들은 차차 채워나가고… 어느 분야에서나 최고 경지에 이른 장인들이 지켜내는 강박관념과 같은 완벽주의를 도무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스스로 정하는 기준이 낮아지고, 대충대충 넘어가도 나중에 고치면 그만이지 생각하고 만다. 그러니 정리할 것은 또 무엇이고, 가르쳐야 할 비법이란 게 있을 턱이 없잖은가?

언제까지고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래서야 더 좋은 무엇이 나올 수가 없지않을까? 풍토를 바꾸어야 하고, 일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물론 ‘갑’이라 불리는 그들의 생각도 바뀌어가기를 진실로 바란다. 합당한 비용과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야 가치있는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다. 졸속으로 지은 다리가 어이없이 무너저내리듯, 후다닥 해치워버린 사이트는 1년도 못가 다시 뜯어고쳐야 할 것이다. 일을 하는 그들에게는 생각할 시간, 연구할 시간, 충분히 의사소통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도 재충전하고 발전할 자기계발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라나야 한다. 더 이상 재주있는 젊은 인재들이 ‘배울게 없잖아요’라는 말을 흘리며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전문직이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그에 합당한 전문지식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 직업과 일의 결과물들이 만들어내는 ‘가치’라는 것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선배들이 스스로의 일을 경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는 자세를 보여야 재주있는 젊은이들이 진지하게 이 분야를 발전시켜나가지 않겠는가?